숲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 숲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원 없이 뛰어놀던 곳으로 그들에겐 넓고 푸른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입구를 따라 줄지어 선 나무들 사이로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난다. 높지 낮지도 않은 초록의 산은 엄마처럼 포근하게 바다를 품고 너른 잔디밭 공원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모래놀이와 두어 개의 놀이기구가 있다. 위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작은 개천을 따라 바위틈 사이로 논게들이 집을 지어 숨어 있고, 가끔은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한지 옆으로 기어 나와 풀숲에 앉아 있기도 하다. 그 위에 세워진 오두막을 지나면 연밭이 하나 있는데 개구리며, 물방개며, 물잠자리에 게아재비, 소금쟁이까지 작은 생물들을 앉아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 오는 남자아이들 열에 아홉은 작은 채집통과 뜰채를 들고 이곳으로 뛰어간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크고 작은 연못과 벼가 심어진 논과 제멋대로 자라난 풀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계절마다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버드나무가 추욱 길어져 그늘을 드리우고, 푸른빛을 내는 잎사귀들이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춤을 출 때의 이곳이 좋다. 대체로 시원하지만 가끔은 눅진한 바람이 부는 한여름도 좋다. 뙤약볕이 사라지고 해가 저물면 숲에는 세상에 없는 고요 대신 들리지 않았던 다양한 생명의 움직임과 소리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늘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건 매미다. 이 하루가 세상의 끝이라 그런지 그들은 내려앉는 어둠 속에서 슬프게도 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말이나 낮보다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평일의 이른 저녁 무렵 우리는 부리나케 이곳을 찾는다. 그러면 숲을 관리하는 직원들도 퇴근해서 우르르 나가고 넓은 주차장도 숲도 텅 비게 된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운동 삼아 걸어온 어른들이 이따금 걸어오는데, 그들도 숲을 한 바퀴 돌아 빠져나가면 이곳은 다시 아이들의 세상이 된다. 정신없이 숲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로부터 썬을 옮겨 내려앉는 어둠 속에서 바다 건너 우두커니 서 있는 반대편 산과 하늘의 경계를 생각 없이 바라보고 반짝이는 별을 찾고, 바다를 오가며 조업하는 크고 작은 배들을 바라본다. 자유롭다. 그냥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롭고 평온해진다.
아이들은 그 어떤 놀이터보다 이 숲을 좋아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게져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렵게 찾은 개구리나 방아깨비를 결국 풀어주고 오는 것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매일 같이 그곳에 가자고 조른다. 이유는 그 시간 그곳에서 가면 약속이나 한 듯 늘 놀고 있는 또래 아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만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그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아무런 장난감 없이 넓은 숲 전체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아파트에서는 잘 들을 수 없는 돌고래 소리를 내며 행복한 표정으로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즐긴다. 마스크 벗고 환하게 웃고 더 깊게 숨 쉬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숲에서 숨 쉬고 뛰고 놀며 자연의 안식처가 주는 위로와 응원, 자유로움과 공존의 가치 그 모든 것을 몸으로 느끼고 또 배우고 있다. 그래서 한 여름 동안 그들의 마음이 한 뼘이나 꽤 자란 것도 같고 무언가 단단하게 여무는 것도 같다.
그 뜨거웠던 여름도 비에 씻겨 가고 아침 저녁으로 한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저녁부터 깜깜해질 때까지 꽤나 놀 수 있었는데 이제는 돌아서면 금세 어두워진다.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 색으로 물들어가는 숲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어제는 아이 치과 치료 때문에 못 갔으니 아마 오늘 다시 숲에 가자고 하겠지? 이제는 조금 더 일찍 나서야겠다. 그들의 마음속 포레스트에 가득해질 추억을 쌓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