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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02. 2021

꿈의 대화, 듣는 기술

의미 있는 대화가 쌓일수록 더 깊은 관계가 된다.

나는 사람들과 말하고 듣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은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로 별 의미 없이, 또 가끔은 깊고 묵직한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즐긴다. 달콤한 쿠키에 갓 내린 커피와 함께여도 좋고, 맥주든 소주든 말랑말랑하게 풀어질 수 있는 술자리도 좋다. 맑고 푸른 날 살랑살랑 바람 불어오는 나무 그늘 아래도 좋고, 전구색 빛이 감도는 아늑한 카페에 앉아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볼 수 있는 날이어도 좋다.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 마주한 상대와 이야깃거리에 따라서 대화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살아 숨 쉰다. 어떤 날은 적당한 시간을 거쳐 서서히 나아가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들쑥날쑥 널을 뛰다가 하늘하늘 춤을 추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분명 귀 기울였지만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해서 답답한 날도 있다. 경제와 과학 분야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날이면 나는 꿀 먹은 듯 조용해진다. 말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대화의 경험이 쌓이고 그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점점 경청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더 좋은 대화를 위해 다양한 책들을 성실하게 읽고 그 속에서 만난 명문장들을 잘 기억하고 알려주고 싶어 열심히 쓰기도 한다.


요즘은《알쓸신잡》이나 《대화의 희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대화이야기를 중심에 두는 프로그램이 대세다.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앉아 하나의 사건이나 , 영화와 같은 공통의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나눈다. 프로그램에 섭외된 비연예인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는 상대에게 고도로 집중한다. 정말 대화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품격이 넘친다.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나아가 타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다른 시공간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나는 ‘경청 방식으로  대화에 함께 참여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갸우뚱하기도 한다.

직간접적으로 나눈 여러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듣기라는 것이다. 보다 잘 알아듣기 위해 모국어 대화를 영어 듣기처럼 하다 보니 다양한 세대 많은 사람들의 인생 경험과 감정 변화의 데이터가 내게 축적되고 있었다. 대화에서는 정돈된 문장이 아닌 살아있는 날 것의 말들이 오고 간다. 유쾌한 이야기에서부터 가슴 저린 사연, 공감되는 불안과 걱정,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날의 풍경,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밀려드는 후회, 온기가 느껴지는 말까지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말하기는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잘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마음에 품고 있던 내 생각과 이야기가 내 입을 떠나 잘 들어주는 누군가의 귀와 마음으로 전해져 공감의 눈빛을 받게 되면 가슴 벅차고 즐겁다. 사물과 세상을 보는 내 관점과 다른 타인의 생각과 태도를 만나면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아직 미완성의 작고 투박한 내 그릇이 도예가의 손길에 의해 차츰 넓어지고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하는 동안 일종의 치유와 발전을 경험한다. 내겐 그러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교무실에 함께 있다.


최근에 나는 여러 대화의 주제 속에서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근데 혹시 꿈이 뭐예요?”

“꿈이 뭐냐니요?”

“그냥 꿈이요. 막연해도 좋고 구체적이어도 좋고 그냥 하고 싶은 것, 마음에 품어둔 꿈같은 거 말이에요.”

대다수의 반응은 이러했다. ‘당황스럽다. 이 나이에 무슨 꿈이야. 학창 시절, 청춘을 다 지나왔는데, 그런데 이거 꿈이 뭐냐고 누군가 물으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다. 목표나 계획이 아닌 그냥 꿈, 나이가 들어도 삶에는 그런 것이 꼭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아, 나의 꿈은 무엇일까?’


봄날의 원탁 대화는 갑자기 나의 꿈 발표회가 되었다. 시간을 달리하여 같은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 모두들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로망을 꺼내어 들려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성큼성큼 달려가고 있고, 또 누군가는 지금의 안온한 삶이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또 누군가는 뚱딴지같은 이 질문 때문에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다양하게 꿈꾸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으며 이내 곧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또 한편 내 꿈속에 그들의 꿈도 깃들기 시작해서 내 마음은 한참을 부풀었다. 꿈 부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내 꿈은 무엇이었더라? 나의 꿈을 찾아 기분 좋은 방황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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