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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05. 2021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축제처럼

섬에서 만난 낯선 유튜버와 함께 한 이야기  

가끔은 틈을 내어 어렵게 여행을 떠나게 되면 그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늘 떠날 듯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배낭 하나만큼은 짐을 쌀 줄 아는 마음, 다른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마음 … 그때그때 만나는 산과 강과 사람을 고마워하고, 돌아서면 또 낯선 곳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늘 낯선 곳에 있는 듯 자유로운 마음, 선선한 눈빛으로 가리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 … 잔가지에 얽매이지 않고 중심의 본 줄기를 찾는 마음. 굳이 짐 꾸려 떠나지 않더라도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서 있는 자리에서 조촐한 오솔길을 내볼 일이다.
양희은, <그러라 그래>


어제 다녀온 저도의 추억을 정리해 본다. 5시 배를 타야 하는데 3시 반에 폰 배터리가 꺼졌다. 중간에 핫스팟을 켜서 패드와 연결하면서 데이터 사용량이 많아져 그 사달이 났다. 저도가 전갱이 밭이라고 해서 갔는데 오늘은 물때가 안 맞았는지 전갱이 떼들이 다른 곳을 회유하고 있었는지 오후 내 낚시는 지루했다. 급하게 배 시간 맞춰 오면서 편의점에서 겨우 샀던 마실 것과 주전부리를 담은 봉지를 뒷좌석 매트에 두고 배를 타는 바람에 섬에서의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애초에 나는 오늘 낚시할 생각이 없어서 그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몇 장 넘기지는 못했지만 책도 읽었다. 그때 내 맞은편에는 벙거지 모자를 둘러쓴 남자가 혼자 벤치에 앉아 뻑뻑 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집에 갈 때쯤 알았다. 그가 1만이 넘는 구독자를 갖고 있는 전갱이 전문 유튜버라는 사실을.


지루한 시간을 재밌게 바꾸려 우리는 험한 바위들을 넘어 조개 캐는 할머니가 있던 물가로 갔고 나는 운동화를 벗고 물에 들어가 대왕 고동을 주웠다. 엄지발가락에 위에 잡힌 물집이 바닷물에 닿아 따가웠지만 갑갑한 운동화를 벗어나니 상쾌했다. 한참을 그곳에서 윤서와 둘이서만 무인도와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다가 낚시의 지루함과 혼자 하는 폰게임에 염증을 느낀 지원과 만나 반대편 몽돌해변으로 건너갔다. 지원은 물수제비를 떴고 우리는 돌을  뒤집어 바글거리는 게를 찾았다. 그리고 엄청난 무당벌레 군락지를 만났고 그곳에서 수십 쌍의 교미 현장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걷는 내내 저도의 식생을 관찰하며 피망 같은 특이한 식물을 만나고 보라색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분 좋은 향을 맡았다.


섬에서의 엔딩은 잊을 수 없다. 아까 만난 그 벙거지 남자. 유튜버 거제도전갱이님의 선의로 잡은 전갱이를 바로 회 떠 강판에 갈아낸 생고추냉이에 간장 찍어 먹고 나왔다.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그의 카메라에 처음 맛 본 전갱이회의 맛을 인터뷰하였다. 그럴 줄은 더더욱 몰랐다. 전갱이 회가 입에서 꾼덕거리고 쫀득하게 녹는 맛을 잊을 수 없다.


삶의 재료는 시간이고, 좋은 삶을 만드는 건 좋은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주고, 나를 성장시킵니다. 여행을 통해 꾸역꾸역 나의 경계를 넓혀갑니다.
김민식,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오늘 아침 새롭게 업데이트된 유튜버님의 영상을 보았다. 본업이 있고 취미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기록하고 즐기고 사는 그의 삶에 우연히 보조 출연을 하게 되었다. 우연한 만남이 대화로 이어졌고, 잡은 물고리를 그 자리에서 근사하게 회 떠 함께 먹는 특별한 경험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우리는 매일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지만 그때마다 나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으니 그 평범한 일이 완전히 낯선 경험으로 느껴졌다. 평범한 일상에서 낯선 경험을 느끼는 것, 낯선 것을 익숙한 영역으로 넓히는 것, 거기서 우리는 무언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놀면서 얻은 좋아하는 경험이 쌓여 자신을 더 성장시킨 유튜버님처럼 놀다가 우연히 만난 우리의 삶도 그와 함께 성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영상 속에 텐션이 높은 나의 목소리가 조금 부끄러웠다. 또 한편 절반은 지루했었던 것 같았던 섬에서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았었나 싶었다. 목소리만 넣고 해도 될 인터뷰에 괜히 얼굴까지 공개해서 평소 내가 대화할 때 스스로 보지 못했던 나를 마주해야 했다. 내 얼굴 미간과 이마 한가운데에 주름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문장을 내뱉기 전 고심하는 것이 얼굴에 묻어났지만 조금 더 부드럽게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줄이며 말해야 듣는 사람도 부담이 줄어들 것 같았다. 아무튼 보정 앱 셀프 카메라의 세상에서 필터링된 나를 나라고 믿으며 살아가던 내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 준 유튜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말할 때의 나를 되돌아보았다. 훗날 서른 중반에 나는 주말에 무엇을 하면 지냈을까 궁금할 때 타인의 기록 속에 존재하는 나와 우리를 찾아볼 수 있겠다.         


매점도 없고  다른 놀거리도 없는 작은 섬이었지만  섬은 좋았다. 우선 가까웠고 이곳에서 만난 어른들은 모두 좋았다. 대합실 앞에서 지긋지긋한 동네 고양이들을 흉보시던 할머니.  냉장고에 맥주 2 갖다 주시려다가 너무 멀어  가겠다고 포기하신 할머니. 그냥  주라고 도와주신 할아버지. 조개 캐시던 할머니, 이곳에서 만난 모든 분들은 모두들 거칠지만 느긋하고 편안한 토영의 색을 갖고 계셨다. 수많은 저도 고양이들의 배웅을 받고 떠나왔다. 먹을   챙겨서 다음에 다시  섬을 가도 좋고  다른 섬을 찾아서 나서도 좋겠다. 다음 주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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