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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Aug 03. 2020

모든 좋은 것들을 해킹당한 날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하는 순간, 그리고 버퍼링 ...  괜찮아질거야

폭염과 폭우가 산발적으로 쏟아지며 지역에 따라 시간 차를 두고 여러 피해를 주고 있다. 뉴스에서 그랬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것 처럼, 어떻하지 하면서 그래도 우리 지역은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조금 더 습하고 조금 더 끈적거리고 조금 더 더워졌지만 8월이니까 다들 그런거니까

내가 하던대로 내 속도를 유지하면서 keep going!

지난 7월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매일 이뤄냈으니 내가 살아온 그 어떤 7월보다 아주 완벽했어.

그런 혼자만의 만족감과 성취감으로 가득했다.  


아침 5시였다. 눈을 떴다.

간단한 세수와 양치, 렌즈 착용, 미스트 칙칙 에센스 한 방울,

미온수 1잔, 영양제 4알, 레모나와 유산균 챙겨먹고

마스크와 에어팟을 챙겨 5시 40분께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챌린져스 6시 기상 미션을 완수했다.

걸었다. 8월부터 매일 아침 함께 걷기로 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고(깨우고) 성큼 성큼 걸었다.

.

야나두 선생님을 만난다. 기초 회화 3. 동사의 주어 역할을 학습할 차례였다.

복습을 하라는데 매번 학습만 한다. it's good to eat과 eating is good.

아침에 맑은 정신에 배우고 입으로 소리 내어 따라도 한 것 같은데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기억에 없다.


편도 2/3 지점에서 레깅스를 입은 언니가 나왔다.

평소 12시는 기본 새벽 두 세시에도 자던 이 올빼미형 언니를 이른 새벽 해안도로에서 만나다니 반가웠다.

아무리 둘러봐서 우리 연령층(비교적 젊은)의 여자는 거의 없다. 우리 뿐이었다.

혼자 걸을 때는 다양한 컨텐츠를 소비하는데 그치는데 반해 같이 걸을 때는 다양한 공통의 대화를 생산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떠들다보면 도착지점에 와 있어 걸음 수도 금방 채워지고 시간도 빨리 간다. 신기한 일이다.


해안도로 왕복 후  1/3지점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오니 7000보 가량이었고 새벽 6시 50분, 나는 아파트 정원 벤치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데 이름은 모르는 우리 아파트 나무들 사이로 흐린데 맑은 하늘, 습한데 좋은 바람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너무 예뻤다. 오늘 아침


클래식 곡을 재생하고 살짝 눈을 감았다. (어디서 본 것이 많다.)

내 눈 앞에 저 푸르른 나뭇잎 모양이 캐나다 국기에 나오는 단풍 모양이니까 여긴 지금 캐나다야.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책들에서 살펴보니 다들 이걸 하라고 하더라구,


"명상"  


이렇게 아침을 사는 건 참 좋은 거구나.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이 아침 1시간에 무수히 많은 것들을 해내고 평온함에 행복감과 충만함, 뭐 좋은 감정들이 벅차오르는 1분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챙겼다. 아이들을 다독여 깨웠다. 원래라면 건성으로 몇 번 깨우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가 엉덩이를 툭툭 때렸다가 3초 안에 안 일어나면 엄마 폭발한다며 3, 2, 1을 외치고 엉덩이를 또 한 번 더 때리고 했다. 부질없이 그랬다. 내가 늦게 일어나니 마음 급하고 나 챙기기 바쁜데 너희까지 안도와주니? 혼자 스스로 해, 어서 빨리, 서둘러, right now! 좀! 제발! 야!!!!!!!!!!!!!!!!!!!!



아침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남편이 먹을 영양제 4가지 간장 종지에 담아 컵에 보리차와 함께 내어 놓는다. 간다고 가는데 믹서기가 안좋은건지 건더기 나오는 케일쥬스를 1잔 대령한다. 약간의 구토를 유발할 수 있는 핵건강맛이다. 요리에 비교적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쥬스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 암튼 오빠가 아침 건강쥬스를 마시고 출근을 한다.


맛이 없는 것이 제일 시급한 문제다


아이들은 내가 차려둔 간단한 아침을 먹고 세수와 양치 후 스스로 오늘의 셀프코디(때마다 엉망인 때가 많으나 본인의 스타일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최대한 스타일의 자유를 존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늘 조금 그렇다.)를 마치고 양말과 마스크를 챙기면 등교(원) 시간까지 만화를 볼 수 있다. 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나는 자기 계발서를 나누어 읽는다.(주3회 독서 챌린져스 인증의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부터는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단속 주민신고제가 시행되어 지원이 스스로 집에서 걸어서 학교에 갔다. 아이가 걸어가는 길은 대단히 안전하다. 아파트단지 돌계단을 내려오면 만나는 보도에서 쭉 올라가면 교통지도를 도와주시는 어르신들께서 횡단보도 앞에 계셔서 기다렸다가 건너기만 하면 되고 건넌 후에는 등교 일행들과 발맞추어 가면 교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5분 남짓의 거리를 늘 차를 태워 보냈다. 우리가 마음 먹고 시도를 안해봐서 그런지 지원은 시무룩하고 혼자 가는 길이 무섭다고 했다. 그래도 텐션 높은 내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보내고 나니 약 5분 후 등교하였다는 알림 문자가 왔다. 다 그렇게 해보면 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



방학이지만 어쩔 수 없는 윤서는 어린이집에 간다. 윤서를 보내어 주고 출근을 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이 아침의 좋은 기운을 깨뜨리는 거대한 외제차 SUV가 내 앞길을 막았다. 그 차가 주차장의 좁은 공간에서 방향을 바꾸어 나가느라 진땀의 핸들링을 하느라 끽끽거리는 바퀴소리를 들으며 5분이 넘는 동안 기다렸다. 짜증이 났지만 기다리는 수 밖에 



아침 30분 정도의 육아시간을 초과하진 않았지만 평소보다 몇 분 늦게 교무실에 들어가니 주뼛거려졌다. 그래도 애써 밝게 굿모닝을 외치고 싶었는데 공기가 무거웠다. 일단 잠자코 눈치를 보며 아침 일과를 했다. 노트북을 켜고 업무포털 접속, 나의 해빙노트와 30days challenge 메모에 어제 및 오늘 하루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준비하는 일로 시작한다. 다시 노트북 상태를 확인, 메신저를 접속해놓고 마저 노트를 정리했다. 아침의 충만함이 가득해서인지 하루 1/2페이지 분량의 공간을 넘어 오늘 아침 노트에는 1과 1/2페이지를 끄적였다. 아침에 읽었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통해 10년 전 (멋모르던 신규였을 때) 새로 부임해오신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에 부르셔서 계획을 세워보라 하셨을 때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그 작은 시골학교에서 그가 구현하려던 1사 1변운동이라는 교육이 무엇인지 완전 알겠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띠릭 도착한 오늘의 첫 업무 메신저는 지난 글 잘 읽었다고 나를 응원, 격려해주시는 선배선생님의 따뜻한 글이었다. 학교 분위기는 조금 무겁지만 오늘 오전은 너무 좋은 것 아닌가 이렇게 마음이 행복해도 되는가, 이것이 바로 해빙인가 했다.   



오전 수업이 든 2개 반에서 채점 기준을 안내하고 1차 채점 후 문항별 재검을 이어가고 비워둔 모호한 점수들을 확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거웠던 분위기를 타파하는데엔 역시 커피, 티타임이었다. 오후 2개의 반에서도 아이들과 같은 시간을 가졌다. 수업을 마치고도 몰려오는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중간 중간 해야할 업무들을 처리하고 재검을 정리하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했구나 하며 뿌듯하려는데 그 순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메신저에도 카톡에도 인스타 DM에도 여러사람이 물었다.



"혹시 인스타그램 해킹 당하셨나요?"



내가 얼마나 정성들여 가꾼 공간인데, 내 아이들 사진이 얼마나 가득한데 내 생각과 내 숱한 일상과 내 푸념과 내 허세들이 얼마나 잔뜩 묻어있는데

오늘 아침도 굿모닝이라고 피드업을 했는데 누가 해킹을 했단말인가?



당신은 누구시길래

굳이 별 쓸모도 없을 내 비공개 계정을 해킹해서는

그 이상한 부업관련 정보를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알지도 못하는 부업 광고 계정을 마음대로 팔로우 해놓고 하시는건가요?



일단 온 몸 세포 하나 하나가 바짝 긴장함을 느꼈고

조금 전까지만도 좋았던 기분이 일순간 엉망징창 뒤죽박죽에 에어컨 아래에 있건만 땀이 삐질 삐질 났다.


이 노래가 생각났다.


"왜 하필 나를 택했니? 그 많은 사람들중에서 "


그리고 바로 해킹으로부터 나의 계정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인스타 도움말과 검색엔진에 도움을 요청했다. 세 시간여 사투를 벌였다.


기계가 인간 위에 있는 것인가?

내 계정은 오늘 남원과 포항, 울산 등 기타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로그인 되었다.

내가 접속 중인데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졌다. 신기했다.

여러번 로그아웃을 하고 비밀번호를 바꾸어도 그는 동시에 접속을 하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었다.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

로그인 보안에 들어가 2단계 인증을 설정하고, 인증 앱을 다운로드 하여 보안코드를 받아 로그인 하는 것

여러번의 반복 끝에 계속 포항으로 잡히던 로그인 활동이 드디어 내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어서부터는 더 이상 부업관련 팔로워가 보이지 않았고 현재까지 다른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정보는 중요한 것이구나. 하나가 털리니 핸드폰으로 하고 있는 다양한 금융 거래와 개인 사진들과 나의 건강 정보 등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정보데이터들이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질 것도 같아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다.



채점을 하다가 연락이 온 언니가 그랬다.


"네 인스타가 돈을 끌어올 것 같은 느낌이었나보다."       



퇴근 후 평소처럼 친한 다인이네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돼지갈비를, 그리곤 늘처럼 근처 공원에 갔고 놀 것 없는 아이들은 신발 던지기를 하며 행복해했다. 공원 가득 바닷가의 습기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얼굴이며 머리카락에 물방울이 나올 것 같았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돼지갈비 냄새가 진동했는지는 커피에서도 돼지갈비향이 났다. 그치만 이렇게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일과를 정리하니 조금 전의 그 해킹사태가 또 막연하게 남 일 같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



아이들과 남편이 모두 잔다.

나는 이런 시간이 좋다.

 

내 곁에 모두 있지만

아무 없는듯한 고요와 적막  


오늘 밤은 이렇게 모든 행복을 해킹 당했던 나의 하루를 정리하며 마감하려 한다.


지원이가 학교 도서관에 가서 빌려온 책을 나보고 읽어보라고 했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빌려왔다고 했다. 읽었다. 마음에 다시 평안이 몰려왔다.


감정적이고 다혈질인 (요즘 셀프코디로 패션테러리스트에 등극한) 지원의 가장 뛰어난 매력은 이것이다.

세심하다. 엄마를 좋아한다. 엄마가 좋아할 법한 것들을 눈치껏 시기 적절하게 은근슬쩍 주고 간다.


강경수 작가님의 꽃을 선물할게. 감동의 밤




고마워.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이렇게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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