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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Aug 09. 2020

너 다음 달에 죽니?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

친구에게 내가 요즘 사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반은 호기로운 자랑이었고 반은 이렇게나 열심히 했으니 어서 칭찬해줘, 칭찬의 갈구였다. 끄덕 끄덕 열심히 듣던 친구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게 물었다.


“너 다음 달에 죽어?”


“응? 죽기는 무슨”


“근데 왜 곧 있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살아?”


아마 갑자기 변한 내가 무서웠나보다. 원래 게으르지만 그렇다고 완전 나태한 것도 아니고, 대체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이나 오래 지속하는 편도 아니어서 늘 작심만 달고 살던 내가 다른 눈빛으로 꾸준히 해 오는 것을 보니 이상할 것도 같았다.


그 대화를 하고 몇 주가 흘렀다. 결심은 굳건했지만 매일은 늘 도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는 늘 예상치 못하는 돌발 변수를 만나고 간혹 생리적 이유로, 또는 날씨 탓에 열거하자면 수도 없는 이유로 까딱하면 오늘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기도 했다.

지행합일, 분명 나는 그것이 중요함을 잘 아는데 그것을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침 1시간 노트를 같이 읽었다.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실현하는데 작은 어려움이 느껴질 땐 그것을 이뤄낸 사람들의 비법을 들여다보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유용한 팁은 메모를 해두었다. 작은 것이지만 꾸준히 할 수 있는 힘, 내가 갖고 싶은 능력은 그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꾸준히 하고 싶은 작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있다. 걷기처럼 일상이 된 것들 아무렇지 않게 잘 되고 있지만 한 뼘 더 나아가 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는 다른 목표들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는 것 같다. 주2회의 글쓰기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그간의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들이 있었음에도 기록화하지 못했다.



무언가 글은 쓰고 싶은데 담아내지 못하고 제목만 끄적 하다가 끄길 몇 번, 읽던 책을 잠시 접어두고 오직의 뜻을 지닌 이지훈 작가의 단이라는 책을 펼쳤다.



단. 이지훈

p.9 프롤로그


더 큰 채움을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잔이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쓸모가 생겨나듯 나를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완성하는 길이다. 노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지만,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비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많이, 더 많이’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넘쳐 흐르는 찻잔을 바라보면서도 계속 차를 따른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빈 잔의 마음, 즉 단의 정신’이 필요하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고수일수록 잘 정리돼 있고 단순하다.


단순함은 불필요한 것을 모조리 제거하고 오직 핵심만 남겨놓은 상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궁극의 경지다.


단의 3가지 공식은 간단하다.

버리고 세우고 지키는 것

1.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버릴 것

2. 왜 일하는지 사명을 세우고,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세우고, 어디로 가야할 지 길을 세울 것

3. 그것을 오래 지킬 것


같이 읽고 있던 김승호 회장의 책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도, 그를 통해 알게 된 고전 속 선현의 말씀도, 오늘 아침 걸으면서 들었던 팟케스트의 전문가들도 다 하나같이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며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야기했다.


비록 다른 이의 눈에는 내가 곧 죽을 것 같은 시한부의 삶을 사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내게는 즐겁고 또 피곤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그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 후 내가 하고 있는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작업을 해야한다. 그것이 이번 여름 방학 나의 숙제가 될 것 같다.


단單이라는 책을 읽기도 전에 신기하게 내 스스로 삶에서 힘을 뺀 것이 하나 있다. 결혼 후 지금껏 내가 열심히 에너지를 쏟으며 하던 일 중 하나는 단연 요리였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그릇 그릇 예쁘게 담아 내어 소담스런 저녁 밥상을 차리는 것, 그것은 내 오랜 로망이었다. 그것들을 실현하며 숱한 사진을 남겼고 그것을 모아 서사임당가정식이라 칭하며 스스로 아무도 사 먹지 않는 이 저녁밥상을 브랜드화해왔었다. 기본 7찬 이상인 과한 저녁 밥상은 많은 설거지만큼이나 식후 과도한 포만감을 갖고 왔다. 설거지로 인한 불화를 가져왔고 식기세척기 구입이라는 방안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한 두 달째 나는 서사임당가정식 피드를 올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요리에 힘을 뺀 것이다. 밥상이 가벼워지는 대신 과한 외식으로 이어졌다. 이런 나를 반성한다.


이번달 도착한 매거진의 요리 코너에 실린 비건 식당 사진을 보는데 내가 앞으로 가족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식사가 이런 것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매일 아침 가벼운 한 잔의 스무디나 과일 쥬스를 만든다. 빼야 할 것과 더 해야할 것에 대해 고민해보고 의식주의 모든 것들의 군더더기를 없애야겠다.



주말 아침, 혼자만의 시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소 엉뚱해보일 수 있으나 이 시간의 사유는 나를 철학으로 이끌고, 삶의 철학을 만드는 순간들이 쌓이는 것 같아 누구로부터도 방해받고 싶지 않기도 하다.




정리에서부터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니

나는 차근히 하나씩 비워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난 다음 달에 죽지 않을 것이고

그 다음 달에도 죽지 않는다.

깃털처럼 가볍게 오래 살 것이다.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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