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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Feb 08. 2022

자가 격리 대상

처음 경험해보는 격리 생활

 눈을 떴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재미있는 것들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환해졌다. 아침 8시였다. 아이들은 깨우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일어나 거실 TV로 가서 좋아하는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깔깔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시각 나는 부들부들하고 포근한 구스 이불을 여전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어린이집 선생님. 일요일 아침 일찍 나에게 연락할 이유가 없는데, 왜 전화를 하셨을까?


“어머니, 우리 반 친구 중에 한 명이 오늘 아침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어서 보건소로 가서 밀접접촉자 PCR 검사를 하라고 했다. 덜컹, 잔잔한 호수와도 같던 내 마음에 돌이 하나 던져진 듯 무언가 내려앉았다. 벌떡, 무의식에 두 발은 이불 밖으로 뛰쳐나와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유지되고 있던 주말의 평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확진자가 처음 발생하고 두 자릿수에 벌벌 떨고 백 단위 능선을 넘어 천 단위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것이 수천 단위로 뛰어오를 때만 하여도 방역 지침에 따라 때맞춰 백신 접종하고 마스크를 잘 쓰면 된다고 믿었다. 믿음처럼 우리는 운 좋게 확진이나 격리로부터 조금 비켜나 있었다. 장기 출장을 위해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 판정을 받은 일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코로나 사태가 두 해를 넘자 매일 같이 발송되는 긴급 재난 문자를 보고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에 어쩌면 무덤덤해졌다. 그냥 일상처럼, 그런데 이번 설 연휴가 끝나고 확진자가 심상찮게 폭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폭증’이라는 단어는 소폭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1만에서 2만, 다시 3만으로 하루 만 명씩 늘자 뉴스에서는 매일 신규 확진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며  보도할 때 그 눈덩이처럼 커진 숫자를 보고도 나는 기함을 토하지 않고 그러려니 했다.


  그런 무심함 속에 날에든 통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추운 날씨에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아 서둘렀다. 아홉 시를 조금 넘겨 보건소에 도착했는데 벌써 줄 선 사람들이 많았다. 딸아이와 나는 구불구불한 PCR 검사 대기 노선으로 남편과 아들은 신속항원검사 쪽을 향했다. 칼날 같은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기나긴 기다림에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두 발가락부터 공기까지, 그곳을 메운 사람들 마음도 두려움과 공포로 얼고 있었다. 춥고 무섭고, 무섭고 춥고. 코를 찌른다는 걸 아이는 알고 있었지만 면봉이 훅 하고 들어오자 얼어붙던 마음에 꼭 찔린 듯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다. 투명한 페이스 쉴드 안으로 마주친 검체원의 두 눈, AI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느라 힘들 텐데도 괜찮다며 웃어 보이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3년째 주말도 연휴도 없이 임시 컨테이너와 천막 아래서 면봉을 들고 코로나와 싸우는 최전선 의료진의 고군분투가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능숙해진 그녀는 여전히 다정하게 아이의 울음을 달래어 검사를 마쳤다. 선별 진료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그저 좋았다. 따뜻함에 긴장이 풀리자 모두들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누웠다. 한숨 돌려 쉬려는데 띠릭, 메시지가 도착했다.   



[Web발신]

[00시 보건소]

어윤서께서는 00#1008의 접촉자로 자가격리대상입니다.

-격리기간 : ~ 2.10(목) 정오      


8살 딸아이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니 자기 이름이 있다며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아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니 내게 축하해 달라고 했다.


“엄마 엄마, 윤서 대상 받는데! 보건소에서 나 코로나 검사 잘해서 상 주나 봐.”

 

아이의 천진한 한 마디에 마음이 먹먹했다. 메시지 하단의 격리 생활 수칙을 읽어주면서 다 잘 지켜야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 걱정이 일었다.

우리,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괜찮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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