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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Feb 11. 2022

2월, 선생님의 학교 이별록

 우리 학교 공식 출근 종료일, 이제는 안녕

하나는 모든 것으로 이뤄져 있고
모든 것은 하나로부터 나온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아포리즘


학교의 시간 중 내게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2월로부터 단단해진 나를 느낀 하루다. ‘우리 학교’를 떠나며 눈물을 펑펑 쏟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써 참은 것도 있지만) 나는 결코 울지 않았다. 엉엉 울고 있는 그녀들을 보며 괜찮다고 토닥이며, 하나 둘 감정을 추슬렀다. 매일 같이 만나며 미운 정, 고운 정, 그러다 보니 깊은 정이 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니 나는 너무 아쉽고 슬프고 서운하고, 그랬다. 아마도 그때는 그것이 끝인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울지 않았다. 2월의 이별이 영영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고 올해가 이 학교의 마지막임을 계속 상기하며 일했던지라 최선을 다해 후회가 남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자녀와 함께 동반 격리를 끝내고 오랜만에 출근하여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그렇게 좋았다. 교장선생님을 만나 뵙고 자리에 앉았는데 4층에서 그녀가 내려왔다. “작가님, 싸인해 주세요!” 온 교무실에 울려 퍼지는 소리, 순간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맞은편 부장님도 줄을 서야겠다며 책을 내미셨다. 전하고 싶은 문장과 감사의 글을 담아 썼다. 출간의 기쁨을 모두 같이 축하했다. 4층의 그녀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꿈꾸는 하와이>를 내밀며 함께 가자고 했다. 부푼다. 책 속의 하와이에 빠져들던 날들, 꼭 걸어서 여행하고 싶었는데 모임 통장을 만들기로 했다. 달뜨는 마음을 눌러 이성의 끈을 잡아당겼다. 업무 정리에 집중하려는데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첫 학교의 제자 K. 숨이 넘어갈 듯 벅찬 목소리로 전하는 그의 임용 합격 소식을 듣는데 내게 이 옥타브가 있었나 싶은 끼악 소리가 나왔고 너무 기뻤다.. 어쩌면 곧 동료로 같이 근무할지도 모르겠다.


1층 현관 앞에 오래 방치된 내게 온 택배. 두 번째 학교 복직 후 2학기 담임을 했던 여대생 제자의 명절 인사와 함께 배송된 작은 선물 상자를 오늘에서야 뜯었다. 향기 가득한 손소독제였다. 그때의 아이들의 냄새와 분위기가 퍼지는 듯했다. 이후 반납해야 하는 업무용 노트북의 수많은 폴더와 파일을 정리하며 기분이 붕 떠 이상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려던 정오 즈음이었다. 꽃말을 생각해 이별을 제외한 의미로 고른 꽃다발을 들고 세심한 아이, J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 졸업식이라 학교에 왔다며 내 마지막 출근을 다독여주었다. 처음에는 중1 꼬맹이였는데 어느새 어른 마음의 고3이 되었다. 그는 열심히 했다 정말 접었다 하던 공부를 다시 한다고 했다. 명확한 진로도 찾은 듯했다. 예쁘고 대견하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짧은 송별회를 했다. 눈물을 쏟는 사람들, 참는 사람들, 지켜보는 사람들 속에서 고마운 마음이 일었지만 눈물은 참았다. 터져 나오지 않은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내일도 일상일 것 같은 원탁 테이블에 앉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웃고 쉬었다. 남겨질 우리 학교를 걱정하고 낯선 다음 학교를 떠올리고 그러다 보니 퇴근 시간에 가까워졌는데 교무실 앞에 여고생 두 명이 숨을 몰아 쉬며 나를 찾았다. 작년 졸업생, K와 L. 이 고등학교는 아직 방학이 아니라 4시에 수업을 마쳐 내 퇴근 전에 오려고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방학도 아닌데 뭐하러 왔느냐 물으니 오늘이 내 마지막 출근이라 얼굴도 보고 인사하러 왔다고 했다. 마음이 고맙고, 고마움을 넘어서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여분으로 갖고 있던 책 한 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 읽어보라 건네주었다. 다 읽으면 다음 친구에게, 그해 교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책이 낡아지는 릴레이 독서가 되기를 바랐다. 건너 건너 많은 제자들에게도 닿기를 바랐다. 별 것 아닌 내가 이런 학교 안에서 작은 영향력을 가졌음을 실감했다.



시동을 건 차 안에서 인스타 알람에 자주 볼 수 없는 초임 동료 선생님의 새로운 피드를 보았다. 이 계절의 금계국과 함께 내가 기록을 좋아한 UCC 전문교사였다는 그때의 회상과 함께 앞으로의 응원이 이어져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퇴근 시간을 넘겨 아침에 약속한 대로 급히 동생네로 가서 아기 조카를 데리고 왔다. 피로했지만 아기가 귀여우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갑자기 집 앞이라는 후배들의 전화가 왔다. 내일 템플스테이를 간다더니 퇴근 전의 태도와 달라졌으나 나는 남편의 퇴근과 함께 바통터치를 하고 급히 뛰어나가 촥촥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아쉬움에 편안히 찾아주는 이들이 있어 쓸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곧 아기 울음 콜을 받고 신데렐라보다 더 빠른 9시에 나는 다시 집으로 뛰어왔다. 아기는 잠이 와서 나를 엄마라고 부르더니 소주 냄새 풍기는 내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부족한 알코올은 남겨둔 스파클링 와인 1/2병으로 채운다. 나는 그렇게 세 번째 학교와 이별 중이다.


어쩌면 오늘 하루를 관통하는 모든 것에 ‘다정’이 있었다. 손잡지 않고 우리는 살아갈 수 없으며 결국 모두는 유대 안에서 숨을 쉰다. 다정한 하루 속에 나를 채우고 있는 깊은 축에 ‘학교’가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술기운에 썼던 지난밤의 글을 오늘 아침 다시 읽으며 결국 이불 킥을 하고 말았다. 글 속에 다분히 감정 과잉이라 SNS의 피드는 지우고 나의 글을 조금 다듬어 비밀 일기장과도 같은 이곳에 저장해둔다.


제자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고 그들의 미래를 오늘도 응원한다. 

울타리 밖의 시선으로는 미처 다 공감할 수 없는 학교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동료 선생님들, 늘 고맙습니다.

2월은 너무 아쉽지만 행복하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학교에서 살아가며 조금씩 자라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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