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손녀가 숙제를 가져오는 날이 갈수록 뜸하다. 집에서 그날의 숙제는 그날 하니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수주전 토요일, 그날은 숙제가 있다고 한다. 늘 할머니 편인 둘째 손녀는 할머니에게 귓속말로 “언니는 틀린 것이 많아 숙제가 있고, 나는 틀린 것이 없어서 숙제가 없다” 고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답을 가르쳐주지 말라고 엄마가 이야기했어”라는 이야기는 제법 크게 들리게 말한다. 은근히 자기를 내세우면 언니를 비꼬는 것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첫째는 3학년이고 둘째는 0학년(킨더가튼 과정)이지만 정규 학생으로 등교하니 적응하려면 국어, 영어는 필수다. 그러니 둘째 손녀도 숙제가 있긴 있다.
그런데 첫째 손녀의 숙제가 뭔지 열어보는 순간, 영어로 가득한 수학 문제다. 초등학교 수학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문제는 질문이 영어다. 수십 년 전에 대학교 과정에서나 마주 대했던 영어로 된 수학 질문이다. 이거 큰일 났다. 영어에서 더듬거리는 순간, 할아버지의 영어 실력도 그렇고 수학 문제도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체면 구길 일만 남았다. 큰일 아닌가?
다행히 그날은 할아버지에게 질문 없이 혼자서 문제 풀이를 하니 할아버지는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다.
하긴 할아버지에게 숙제를 도와달라고 했어도 할아버지에게는 묘수가 있긴 했다. 만능 박사(?, 전부 믿으면 안 된다.)인 AI가 있다. 나는 ChatGPT를 유료로 쓴다. 지불 금액보다 훨씬 많이 이용하고 있으니 득이라 생각하면서.
주로 사진을 많이 활용한다. 간단하다. 스마트폰에서 ChatGPT를 열고 프롬프트 창에 사진을 올린 다음, 사진 밑에 간단한 명령어를 넣으면 된다. AI는 사진에 대한 해독 능력이 탁월하다. 언어에 대한 장벽도 없다. 수학 문제일 경우 “문제 풀어줘”,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등 외국어로 답하면 “한글로”, 심지어는 반발 투면 “존댓말로”, 이런 명령어면 된다.
그러니 이 친구의 도움만 받으면 손녀의 어떤 숙제이든 자신 있게 대응할 수가 있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도 그렇다.
사실 요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AI를 부려 먹는다. 35년 전, 미국 유학 때, 오디오에 일찍 눈뜬 이웃 유학생의 권유로 장만했던 빈티지 오디오 기기들, 둘째 아들이 여기저기서 사 모아둔 빈티지 오디오 기기들이 집안에 꽤 많이 있다. 그동안 용도도 가치도 몰랐지만, ChatGPT에게 사진 보여주고 그냥 뭐냐하고 물어보기만 해도, 얼마나 유명한지, 거래가가 어느 정도인지, 몇 볼트를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서로 연결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까지 알려주니, 그야말로 척척박사다. 그러니 밤 가는 줄 모를 수밖에.
아예, 질문이 많다 보니, 분야별 프로젝트(현재는 디지털 기기, 동물 관련, 건강 관련, 시장가격, 식물재배, 음악, 주식 관련, 세금 관련, 법률 관련, 역사, 엘리(손녀) 숙제, 음식 만들기, 한약 제조, 수리보수, 보이차, 골프)가 만들어졌고, 각 프로젝트 안에는 많게는 수십 개의 질문들이 축적되고 있다.
요즘 대선을 보면서, ChatGPT에게 여왕개미는 별도의 DNA를 가진 개미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만들어지면 여왕개미를 만드는 주체(여왕개미, 보모 일개미, 단순 일개미, 수개미)는 누군지를 물었다. 참고로 여왕개미의 수명은 수년에서 20년 이상, 일개미는 수주에서 수개월, 수개미는 한 번의 교미로 생을 마감한다. 이만하면 여왕개미를 만드는 과정에 엄청난 권력투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계의 재미있는 현상이다. 궁금하시면 직접 AI(ChatGPT, Gemini, Grok, Copilot, Perplexity 등등)에게 물어보시라. 이 작은 미물이 지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 지를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