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품고 살아가는 방법 (10화)
‘우리 아이가 혹시 자폐일까’ 직감하는 세 가지 잣대 - 눈맞춤, 호명 반응, 공동주의 여부. 아이의 징후에 뜨악해지는 순간이 위 세 가지라면, 자폐스펙트럼 증상에 좌절하다 못해 막막해지는 순간은 또 따로 있다. 바로 아이가 감당 안 될 정도로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이른바 ‘텐트럼 (temper tentrum)’이 터지는 때다. 정상적인 발달을 보이는 아동들에게서도 물론 마트나 백화점에서 원하는 걸 얻지 못했을 때 ‘떼쓰기’가 나타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자스 아동의 텐트럼은 그 강도와 빈도가 훨씬 (x 100) 센 느낌이다. 왜 이렇게나 강력한 떼쓰기가 나왔는지 사전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급작스러울 때도 많다.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엄마의 두 볼이 빨개지도록 심한 떼쓰기가 나타난 날을 나는 ‘그분이 오신 날’이라고 이름 붙인다. 아이의 극심한 텐트럼에 몸도 마음도 지쳐 떨어져 나가는 날이다.
폭풍전야. 아이의 텐트럼에도 적용되는 말 같다. ‘오늘따라 얘가 왜 이렇게 말을 잘 듣지?’, ‘요즘 들어 왜 이리도 평화롭지?” 느꼈다면 위기 발발 직전일 수도 있다는 것. 한동안 차분하고 조용하다 싶었는데 원인을 모를 떼쓰기가 ‘팡’ 출현하기라도 한다면 일단 엄마는 당황스럽다. 아이의 성질을 돋아 낸 무언가의 원인이 있을 텐데, 그걸 알아야 사전에 방지를 하거나 그걸 잣대로 어설프게라도 ‘협상’할 텐데 정체불명의 ‘그분’이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들어온 셈이니까.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던 마음속 불청객이 문을 부순 채 들어와 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수십 분의 텐트럼은 그야말로 ‘좌절, 고통, 절망, 막막…’ 온갖 안 좋은 감정 언어를 갖다 붙여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속상함의 극대치를 찍는다. 또래 아이들의 떼쓰기는 이토록 심하지는 않은 것 같던데 우리 애는 왜 이럴까. 왠지 억울해진다.
한 번은 소아과에 가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처음엔 괜찮았다. 엘리베이터에 평소에 좋아라 하던 거울도 있고 상단부 스크린에서 번쩍번쩍 영상도 나오니 아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이 꽤나 장착되어 있기 때문. 하지만 층과 층을 지날 때마다 낯선 사람들이 겹겹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아들은 이내 불안해졌던 것 같다. 만원일 정도로 빼곡하게 사람들이 찬 것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거슬린 걸까. 불현듯 아들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7층, 6층…5층…432…1층. 내려오는 속도가 내겐 왜 그리도 느리게 느껴졌던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면 그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아들이 쉽게 진정될 리 없으니 나라도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숨 호흡을 쉬어본다. ‘아들아, 제발 엄마 한 번만 봐주라. 그만 좀 터져주라. ‘
말로 해봐 말로
이러면 안 돼. 진정해.
“말로 해봐 말로.” 아들이 터졌다 싶을 때 주로 하게 되는 말은 바로 이것. 수용 언어와 표현 언어의 발달이 또래들에 비해 다소 뒤처져있던 아이는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있다 싶으면 ‘뿌앵’ 터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말로 ‘어찌어찌해서 내가 이토록 기분이 상했다’고 힌트 조금만 주면 얼마나 좋을까. 뭐 때문에 소리를 지르는지, 어떤 포인트에서 잔뜩 짜증이 난 건지 단 5%만 알 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텐트럼) 터진’ 원인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했지만 아무리 뒤적뒤적 살펴도 사전 상황 없이 ‘멜트다운 (melt down, *아래 참고)’ 될 때도 있었으니 … 24시간 함께하는 양육자는 그저 너덜너덜 지쳐나갈 뿐. 아들아, 말로 해봐. 말로 하면 해줄게.
텐트럼 그 후… 심한 떼쓰기가 지나가고 나면 아이는 내가 언제 말썽을 피웠냐는 듯이 평온하고도 수줍은 미소를 씨익 짓곤 했다. 그토록 진정이 안되다가 이럴 일이야. 그분이 오셨다가 가시기만 하면 이토록 고요해질 것을. 그분이 오신 그 순간만큼은 영영 안 가실 것만 같이 난리 대잔치를 치러야 하니 아이의 감정 기복에 호흡 맞추기가 수능시험보다도 힘들다. 방송국 취업문 뚫기보다도 어렵고. 세상 어떤 육아가 안 힘들겠냐마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을 절대 모를, 텐트럼 터진 날. 그분이 오신 날.
우와, 이제 조용해졌어
엄마 눈 보고 울음 ‘뚝’ 하니까
이렇게 예쁘네
ABA 치료사 선생님들께서는 이렇게 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아이에게 소위 ‘그분이 오셨을 때’는 일단 무작정 ‘떼쓰기’에는 절대 반응해주지 말 것. 주변 환경이 안전한지 확인한 뒤 아이가 좀 가라앉을 때까지 지켜만 보고 기다릴 것. 그리고 뒤이어 아이가 조금이라도 엄마의 최초 지시에 협조하려고 하거나 눈을 맞추며 무언가 ‘적절한 요구’를 하려고 시도하면 위와 같이 이야기해볼 것. 안 좋은 행동은 ‘소거 (extinction)’해야 하니까 반응해주지 말고,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행동을 보이면서 상대방과 소통하려고 하면 긍정적으로 말 걸면서 ‘강화 (reinforcement)’해 주라는 취지에서였다. 한번 텐트럼이 터지면 30분은 물론 1시간도 훌쩍 넘게 이어지기 때문에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는 꽤나 긴 호흡의 상황이 흐른다. 머리로는 아는데 침착하게 실행하기가 꽤나 어려운 날들. 매뉴얼은 알고 있지만 실천은 너무 어렵다. 그분이 오신 날은 그렇다.
10여 년쯤 흐른 뒤 아들에게 이랬노라 저랬노라 들려줄 추억담이 된다면 참 좋겠다. “너 어릴 적에 글쎄 그분이 오신 날이 있었잖니?” 10여 년쯤 흐른 뒤에도 아들은 여전히 텐트럼 (temper tentrum)과 멜트다운 (melt down) 사이를 오가고 있을까. 감정조절과 행동조절이 힘들어서 아이도 아이의 동생도 나도 남편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살면서 누구나 자기 고집을 부리며 ‘떼쓰기’를 하지만 아이의 유별나고도 특별한 텐트럼에 지치는 날들이 지금, 여기, 잠깐이면 참 좋겠다. 그분이 너무 오래 머물다 가시지 않기를, 그분이 너무 자주 찾아오시지는 않기를 소박하게 바라보는 아침. “부디, 오늘도 아들과 (텐트럼 없는) 무사한 하루를 보내게 해 주세요.”
* 멜트다운 (melt down) =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동이 고정되고 정형화된 패턴을 좋아하는 상태가 변화될 때 그 새로운 질서와 자극에 공포를 느껴 행동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 일반적인 텐트럼 (temper tentrum)과 달라서 아이의 상황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인 벌로 대처하려고 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