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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장 Dec 15. 2023

퇴사를 결심하다

나를 지키기로 결심하다.

2019년 2월, 전 직장을 퇴사하고 약 5년이 흐른 지금 난 또 다시를 퇴사를 결심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결정한 건 아니다. 5년 전 퇴사의 명분은 동의하기 힘든 일방적인 인사발령과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금의 퇴사는 오롯이 '나를 지키기 위함'이다. 심신이 지쳐 더이상 소진할 기운도 없어서 막장까지 온 끝에 내린 결론이다.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도 그만두겠다는 다짐을 수차례 했었다. 상사와의 마찰과 고된 업무탓에 몸과 정신이 망가져 가면서도 남들이 인정해주는 회사 브랜드와 급여, 복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작년에 사달이 났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염증이 심해져 대학병원에서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까지 받게 된 것이다. 억지로 나 자신을 이끌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몸이 탈났다. 그 때 브레이크를 강하게 걸었어야했다. 당장의 생계와 막연한 불안감으로 인해 우유부단하게 집과 직장을 오갔다.


보름 전부터 예정에 없던 근로감독을 받으면서 건강은 급격하게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기존 업무와 더불어 근로감독 자료를 만들고 준비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몸에 염증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회사에서 일할 때는 얼굴이 상기되어 예민해졌다. 당연히 주위에 쉽게 짜증과 화를 내면서 내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퇴사'라는 주제로 최근 한 달간 곰곰이 생각하고 나를 들여다봤다.


우발적인 감정에 의해 결정했는가?

단순히 도망치고 싶은 심정으로 결정했는가?

퇴사 이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회사 사람들과 가족, 친구들보다는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퇴사가 불가피함을 설득해야했다. 사실 나와 주위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근로계약을 언제든 종결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단지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트는 중차대한 사항이므로 신중함과 정리가 필요했다.


독일의 언론인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마티아스 뇔케(Matthias Nöllke)의 베스트셀러 명저인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인지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에 따르면 어떤 일에 시간과 열정을 많이 투입하면 할수록 그만큼 끝맺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더 이상 계속해 봐도 소용이 없으며 끝내야 한다는 것을 본인이 분명하게 예감하고 있더라도, 실패하지 않으려는 '실패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실패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한다. 내가 그랬다. 직장에서 보냈던 나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번아웃과 퇴사를 예감하면서도 놓지 못했다.


성격 유형 검사 중 하나인 MBTI 검사를 해보면 J(계획형) 성향이 높은 내가 이직할 곳을 결정하지 않은 채 퇴사부터 우선 실행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렇게 일단락짓고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할 곳을 알아보고 최종합격까지의 절차를 진행하기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회사를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를 편히 누이기 바쁜데, 어떻게 기운을 내서 이직을 할 수 있을까. 독한 의지로 한쪽 발은 현재 회사에 발을 걸치면서, 간간이 연차와 반차를 써가며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원하는 회사로 간 케이스도 많이 봤지만 단순한 나는 그렇게 못하겠더라.


그렇게 퇴사하기로 결론내린 당일날 밤에 친한 동생과 저녁을 먹다가 퇴사 선언을 최초로 하는데 "힘들었구나"라는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힘드니?", "일은 할 만해?"라는 위로와 격려를 받지 못한 채 나를 방치해왔다. 내가 나에게 해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때론 주위 사람들에게 힘드냐는 말 한마디를 건넬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진심이나 성의가 담겨있지 않더라도 그 말 한마디에 사람이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이제 퇴사를 결심한 이 시점에서 인턴을 포함한 총 10여 년의 직장생활을 정산해봐야겠다.

구직과 동시에 나를 챙기고 돌아보며 아끼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예정이다. 쉼, 여행, 운동, 성찰, 고민, 독서, 기도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계획이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퇴사는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결코 퇴사가 정답이 될 순 없다. 하지만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나의 퇴사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수 밖에 없다. 이제 나를 잃어버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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