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죽을 때까지 지금 여기 그리면서 채우는 작업의 반복
인생은 숙제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체로 성장환경에 따라 부모님이나 보호자의 말과 가르침이 인생의 숙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주위의 기대와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 또한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이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원하는 삶을 그리고 그렇게 살 수도 있지만 스스로 원하는 바를 모르기 때문에 내가 나에게 여전히 남의 욕망을 숙제로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내 생각이 없으니 남의 생각으로 사는 상태다.
이 나이에는 이거 해야 하고, 저 나이가 되면 저걸 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과 강박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나이 들면서 짙어지는 인생관이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관념이다. 인생을 숙제 해내듯이 의무로 점철된 일들로 채우면 '나'를 지우고 '남'이 내 삶에 들어선다. 남이 들어선 내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답도 아니다. 자유를 포기한 대가는 편안함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관습적으로 규정한 삶의 방식을 쫓으면 그럭저럭 편하고 남들도 인정해준다. 남들이 말하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로 삶을 채워도 실패한 인생이라 볼 수 없다. 그렇게 성공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살아서 인정받고 편안한 삶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한편 생각해 본다. 인생에 당연히 으레 해야만 한다는 것들이 가당키나 한가 싶다. 물론 10대에는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며, 청년기와 중장년기에는 경제활동을 해서 밥벌이를 하는 큰 틀은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마저도 정답은 아니다.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으면서, 최소한 도움도 안 주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들에 더이상 휘둘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이제 쫓기듯 살고 싶지 않다. 남의 인생을 살고 싶지도 않고, 사회가 바라는 욕망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도 희미해져간다. 내 속도에 맞춰서 내가 재밌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나답게 살고 싶다.
인생은 도화지다. 내가 원하는 도구로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채우면 된다. 채우지 않고 비워두어도 좋다. 다만 한 번 그린 선과 한 번 채운 색깔은 지울 수 없다. 후회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의도치 않게 내가 싫어하는 그림이 그려져도 그마저도 내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그려진 내 그림이다. 원하지 않은 그림이 그려졌다고 내 도화지를 스스로 훼손하면 '자학'이고, 내 도화지가 싫다고 없애버리는 행위는 내가 나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자살'이 된다. 이미 살아온 세월은 그대로 두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 그릴 그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토록 싫은 선이나 색깔이 칠해졌어도 지나고 보면 그걸로 인해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감사할 수도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인생의 도화지는 정말 맨 마지막에 평가해야 한다. 2024년 12월 29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좋은 예다. 재임 당시에는 인기없는 대통령이었지만, 퇴임 후 전세계를 누리며 빈곤층을 위한 국제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 질병 퇴치,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 등 인류를 위한 공헌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이든 뭐든 끝이 좋아야 한다고 하나보다. 끝이 좋으면 시작이 안 좋았더라도 전체가 좋아진다.
인생은 숙제가 아니고, 정답도 없으며, 의미와 재미도 없다. 그리고 인생이 숙제가 되기도 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해서 달리기도 하고, 의미와 재미가 있기도 하다. 그렇게 인생은 아이러니다. 내가 왜 인생을 숙제처럼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인생 자체에 어떤 의미나 주어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신에게서 직접 계시를 받은 경우는 예외다.
지금까지 그려 온 인생의 도화지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금 여기에서 다시 그린다. 그리고 내일, 모레, 글피에 그날그날 나에게 맞게 그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