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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Apr 13. 2020

살면서 욕 한번 안 해본 사람 있나요?

'욕'은 누군가에겐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말이기도 하고,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시원하게 표출해주는 대변인의 역할도 한다. 오랜 친구들끼리 욕을 섞어가며 술 한잔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글의 제목과는 다르게 나는 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다 큰 성인이 욕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비속어와 은어를 달고 사는 학창 시절에도 나는 한 번도 욕을 쓰지 않았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의 대화에서는 욕을 빼면 남는 게 없다 할 정도인데도 말이다.  


욕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보통의 아이들이 흔하게 쓰는 존X, 졸X 같은 말도 나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러한 단어를 섞어가며 열띤 대화를 나눌 때도 나는 꿋꿋이 순우리말만 사용했다. 그렇다고 고운 말 예쁜 말을 사랑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며, 마냥 착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의 아이도 아니었다.






사실 밝히자면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욕을 배웠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우리 반에 욕을 일찍 배운 아이가 있었다. 그때는 욕이 나쁜지 몰랐다. 그냥 친구들이 쓰길래 나도 따라서 썼고, 나쁘다는 걸 모르니 가족들 앞에서도 그 말을 썼다. 내가 욕을 안 하게 된 것은 이 때부터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오빠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우리는 같이 하교를 했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오빠가 나를 챙겨서 같이 집에 왔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서 있던 일을 오빠에게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욕을 썼다. 병X 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때 오빠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내게 정색하며 말했다. 



그거 나쁜 말이야. 그런 나쁜 말 쓰면 안 돼.
너가 하는 모든 나쁜 말은 결국 우리 엄마 아빠한테 하는 말이야.
엄마 아빠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단순하게도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욕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빠의 한 마디에 바로 고친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초등학교 3학년 짜리가 동생에게 이런 교육을 한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다. 그때는 오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오빠도 잘 모르고 했을 것이다. 그냥 "아 내가 지금 병X 라고 말하면 이게 엄마한테 전달되는 거구나! 그럼 하면 안 되겠네! 난 엄마를 사랑하니까!"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가 보인다고 한다. 오빠가 그 시절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바로 이거였을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결국 부모의 모습과 가르침을 보여주기에 못된 짓을 하지 말라는 것.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라 참 의미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우리 남매는 엄마 아빠에게 나쁜 말을 할 순 없으니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욕을 쓰지 않았다.






그때 오빠의 한 마디로 30대가 된 지금까지 나는 25년 가까이 욕을 쓰지 않았다. 욕을 안 쓰는 것도 습관이 되어 주변 친구들이 아무리 험한 말을 주고받아도 나는 전혀 휘둘리지 않는다.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나는 내 입에 더러운 말을 담고 싶지 않아" 라고 도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욕을 쓰지 않는 것의 특별한 장점을 몰랐다. 어느 정도 머리가 자라고 나니 욕을 쓰지 않아도 나의 모든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순간에 사람들은 손쉽게 욕 한마디로 그 감정을 대변해 버리지만 나는 욕 하나 섞지 않고 내 감정을 온전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만약 내가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한다면 나의 감정과 주변 사람들의 기분까지 모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나는 좀 더 감정 컨트롤을 잘하고, 불쾌한 상황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고 의연해질 수 있었다.






이전에 TV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을 보다가 매우 공감되는 내용이 나왔다. 김영하 작가 의견으로, 학생들에게 '짜증나'라는 말을 금지시킨 것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학생들이 모든 감정에 너무 쉽게 '짜증나!'라고 뱉어버리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우리의 감정에 더 솔직해지고 다양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 '짜증나'가 아닌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것을 권했다.



 



완전히 다른 감정의 무늬를 하나로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표현이 '짜증'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욕'도 그러한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욕을 뱉고 싶은 순간에 그를 대신할 무수히 많은 표현들이 존재한다. 나는 나의 감정에 더 솔직해지고, 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고, 타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여전히 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빠는 어릴 적 본인이 이러한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 못 할 것이다. 나조차도 너무 어린 시절의 일이라서 그때의 일이 꿈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저 날의 일화는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내내 기억나는 에피소드이다.  


나중에 자녀가 생긴다면 우리 오빠가 알려준 것처럼 내 아이에게 이 방법을 사용해 보고 싶다. 물론 욕을 쓰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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