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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Jun 02. 2019

첫 소풍

 어제 아이는 소풍을 다녀왔다. 태어나 처음 아이 혼자 보낸 소풍이었다.


 한 달 전쯤 어린이집에서 동네 산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선생님의 권유로 나도 따라나섰다. 아이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떼를 피우고 울고 화를 냈었다. 친구들은 아이를 기다리기 위해 자주 걸음을 멈춰야만 했고, 나는 울지도 웃지도,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했다.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이를 보내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고민하는 내게 선생님은 괜찮을 거라고 답해주었다. 점심 도시락이 나오지만 평소에 어린이집에서 식사를 거부하는 아이가 먹을 것 같지 않아서, 김밥과 간식 도시락을 싸서 보내기로 했다. 어떤 통이 더 가벼울까, 쏟아지진 않을까, 집에 있는 통이란 통은 다 꺼내서 비교한 끝에 도시락을 쌀 수 있었다.



 열두 시면 하원 하는 평소와 달리 네시 즈음에 돌아올 거라 했고, 덕분에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보았다. 은행에 가서 그동안 못 봤던 일도 보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아이의 도착 소식을 기다렸다.


 소풍에서 돌아온 아이의 얼굴엔 졸음이 그득했다. 선생님에게서 기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번 나들이와는 달랐다고, 식사도 했고, 조금의 떼를 부렸지만 금방 달랠 수 있었다고, 아이를 칭찬해주라고, 기특하다는 말이었다.


 하루하루 커 나가는 아이를 보며 안도감과 빨리 친구들과 같은 속도로 가면 좋겠다는 초조함이 공존한다. 우리 아이는 우리 아이만의 속도로 가고 있다는 걸, 열심히 크고 있다는 걸 자주 망각한다.


 내일 하루만은 아이에게 꽥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해주겠다고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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