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잘라줘야지, 생각만 몇 달째. 키즈 미용실도 거부, 이발기도 거부, 가위도 거부. 엄두가 나질 않아 방치했더니 아이는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간지러워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머리를 반드시 잘라야겠다고 결심했다. 일주일째 끊고 있던 텔레비전과 게임까지 동원해서 머리를 자르자고 아이를 꼬셨으나, 아이는 "싫어"라고 말하며 도망 다녔다. 억지로 잡아서 밀어붙이려 하자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서럽게 울었다.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는 잠시 한쪽 머리를 숭덩 잘랐다. 아이의 머리를 자르는 일은 오늘이 두 번째였다. 한 번은 이발기로 박박 밀어 아이를 동자승으로 만들었다. 보통은 울어도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후다닥 자르거나, 손재주 좋은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잘라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방법들을 모두 거부했고, 어쩌다 보니 자칭 똥손인 내가 또다시 가위를 잡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감각이 예민한 편에 속했던 아이는 머리를 자르기 위해 두르는 가운과 수건을 거부했다. 그래서 몸에 닿는 잘린 머리카락 감촉에 머리 자르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숭덩 몇 가닥을 못 자르고 아이에게 머리를 자르는 것을 들켰고, 아이는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화를 내던 아이를 달래고 낮잠을 재웠다. 차라리 재운 채로 자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급하게 자르다가 문득 이렇게 막 잘라도 되는지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이 커트 자르는 법을 검색했고, 몇몇 사람들이 블로그에 써놓은 글대로 정수리부터, 사선으로 잘라나갔다. 뒷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을 시간도 없이 아이가 깼다. 잘린 머리카락이 제 몸을 찌르는지, 아이는 어깨를 털며 짜증을 부렸다.
아이를 씻기고 보니 앞머리는 제법 괜찮은데, 뒤통수가 고르게 잘리지 않아 땜빵이 몇 개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어쨌든 머리를 잘랐다! 큰 숙제를 해낸 것처럼 속이 후련하다. 당분간은 이 방법으로 머리를 자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