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이 느린 아이를 이대로 두는 건 안 되겠다, 죽기 살기로 노력해보자고 결심하고 행동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핸드폰에서 SNS를 지웠고, 유튜브를 지웠고, 아이와 등산을 하고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책을 읽어줬고, 어린이집에서 주는 학습지를 풀었다. 장난감의 건전지를 넣어주지 않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원하는 장난감을 사줬고,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설명을 많이 했다.
가장 많이 변한 점은 아이가 시끄러워졌다. 어떻게 말없이 살았나 싶을 만큼, 쉼 없이 흥얼거리고 단어에 이어 지난 주말엔 동사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리액션을 많이 해주자 아이는 스스로 밥도 먹기 시작했고, 호명에 반응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주, 이름을 불렀을 때 "네!"라고 아이는 처음으로 대답을 했다. 돌 무렵부터 시켰던 것을 세돌이 이렇게 많이 지나서야 해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처음엔 억울했다. 남들도 유튜브 다 보여주면서 키우는데, 내 나름 열심히 키운다고 키웠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왜 우리 아이는 소통이 안되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을까. 주위 어른들의 "때 되면 다 된다"는
말만 듣고 싶었다.
그다음엔 죄책감이 찾아왔다. 내 탓이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끝이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단 생각만 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남들은 두세 개 가르치고 나머지 두세 개를 스스로 터득해 다섯 개를 배우면, 우리 아이는 다섯 개를 배우려면 다섯 개를 가르쳐야 한다는 걸. 느리게 배우지만 해내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양육자의 관심과 애정이라는 걸 뼛속 깊이 느끼고 있다. 장난감이, 미디어가, 돈이 아이를 잘 키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나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고, 죄책감을 느끼고, 하나씩 해 나가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놓이고 욕심이 생긴다.
종알종알 떠드는 아이 덕분에 웃을 일이 많아졌다. 뜬금없이 뱉어내는 소리에 황당해서 웃고, 놀라서 웃고, 예뻐서 웃고, 시끄러워서 웃는다.
손꼽아 바라던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