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선물 같은 나날이라고 글을 썼다. 절대 안 될 것 같았던 아이의 말문이 열렸고, 아이 스스로 하는 것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어제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에게 남편은 무의식적으로 "뭐 먹어?"라고 물었는데, 아이가 "고래 밥"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의 대답을 처음 들은 남편은 오늘까지도 그것이 감동이라고 말한다. 오늘 아침엔 어머님이 아이의 밥을 수저에 떠 올려놨는데, 아이가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스스로 하겠다는 거다. 혼이 날 때도 아이는 상황 판단이 어느 정도는 되고, 눈치가 늘은 것 같아 보였다. "이러면 돼요, 안 돼요?"라는 질문에 "안돼요"라고 답했다.
'처음'이라는 것은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두 번, 세 번이 되면 결국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문득 나는 아이가 무언가 스스로 하거나, 새로운 말을 할 적마다 "에휴, 두 돌 때 해야 할 걸 이제 하네." "다섯 살 엉아가 이제야 혼자 밥을 먹어요."라는 말을 붙이고 있단 걸 깨달았다.
며칠 전엔 아이의 어린이집 참여 수업에 거짓말을 해서 참석하지 않았다. 굳이 참석을 해서 아이가 느린 걸 재확인하고 괴롭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삶을 살고 있을 거다. 아이와 나 역시 우리의 속도로 살고 있는 것을 안다. 남들과 달라도 어차피 인생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니 별 상관없다. 그걸 알면서 스스로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고, 도망치고 있는 나를 종종 보게 된다.
이 곳에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쓰는 건 쉽다. 하지만 실제로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어렵다. 매일 하루살이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이 쉬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마음껏 웃을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주자, 매일 다짐을 하고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거다. 결혼 전 남편과 일 년간 이별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써먹던 방법이었다. 오늘 하루만 연락하지 말자, 매일 다짐했고 그렇게 일 년간 나는 남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방법을 이젠 남편이 아닌 아들에게 써먹어야 하다니...
느린 것이 때론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어머님은 종종 말씀하신다. 남편이 이십 대 초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지만 제 밥그릇 잘 챙기고 가족 잘 건사하고 사는 걸 보면, 느리게 가는 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덧붙여 말씀하신다. 그럴 때면 난 "어머님 아들이 말해야 할 때 말 못 하고, 발달 검사를 받으라고 여기저기서 권유를 받은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대답을 하지만, 뭐 어쩌겠나 싶다. 아이와 나의 속도는 남들보다 느리고, 느리지만 흐르고 있다는 것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오후 세시가 넘었지만 오늘의 다짐을 한다. 아이가 맘껏 웃을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