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1월부터 쭉 집에서만 생활한 아이는 요즘 들어 무료함을 감추지 못했다. 갓 태어난 동생의 이불보와 장난감을 집어던지며 심술을 부리고, 엄마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어서 동네 산과 마트, 산책을 하며 바람을 쐬어줘도 아이는 하루 종일 자신만을 봐주길 바랐다. 심심했기 때문이다.
애 둘을 키우는 건 두배 예쁘고 열 배 힘들다더니, 그 말에 백 번이고 공감이 갔다. 나는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고, 한의원에선 산후풍이 왔다고 했다.
이대로는 나도 아이도 괴로울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코로나 때문에 보내지 않겠다 생각한 원에 다시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 결심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작년, 다섯 살부터 원에 다닌 아이는 코로나로 인해 오래 쉬게 되자 원을 거부했다.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원에 가보고, 그 앞에 작은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사 오기도 하고, 새로운 반의 선생님이랑 인사만 하고 오기도 하면서 언젠간 들어가겠지,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원에 들어갔다. 친구가 내려와서 “너 왜 그래? 놀이터에 가면 기분 좋잖아.” 하고 손을 잡고 데리고 간 것이었다. 그 날 20분 정도만 원에 있던 아이는 집에 오는 길에 친구들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다음 날, 외출을 준비하면서부터 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피우던 전과 달리 아이는 고분고분 외출 준비를 하며 “어린이집에 안가.” 말을 했다. 안 가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친구가 손을 잡아주자 아이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원으로 들어갔다. 그 날은 하원 길에 친구들은 낮잠을 잔다고, 자신도 낮잠을 자겠다고 말했다.
어제, 아이는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낮잠까지 자고 왔다. 작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녔음에도 적응하지 못해서 포기했던 부분이었다. 어린이집 첫 입소 때 산 낮잠 이불을 처음으로 들고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혹시 울진 않을까, 엄마를 찾진 않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의 하원 시간을 기다렸다.
하원 길에 선생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의 시간을 잘 보냈다고 했다. 엄마를 조금 찾긴 했지만 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는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도 예쁘다고 말했다. 처음이었다. 이런 행동은 장애 아동에게 보이는 행동이라는 피드백만 들어왔었다. 내 눈에 주책맞게 눈물이 맺혔다.
아이는 오늘 기분 좋게 등원을 했다.
(잊을만하면 울리는 재난문자에 아이를 원에 보내도 될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든다. 이 시대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