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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Jul 30. 2019

육아의 자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상사였던 j는 안 좋은 일을 겪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종종 말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흘겨들었는데, 요즘의 내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도 육아를 하면서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 비법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하는 자세일 거다. 출산만 하면 내 일이 다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철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었던, 스물일곱의 나는 세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 아이를 품에 안고 절망했다. 이 생활에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졌고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백일이 지나자 아이는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나의 우울과 절망은 갖가지 다른 이유로 찾아왔다 떠나갔다.


(처음으로 얼굴처럼 보인) 아이의 작품

 최근 몇 달간 나의 가장 큰 괴로움은 아이의 느린 발달이었다. 멋지게, 쿨하게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나는 자주 무너졌고, 울고 싶었고 막막했다.


 아이의 문제는 양육자의 문제일 때가 많다. 나의 경우는 예민한 아이를 과잉보호하며 스스로 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유튜브를 보여줬고, 언젠가는 하겠지 생각으로 아이의 느린 발달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몇 달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에게 말을 많이 건네기 위해 노력했고, 함께 체험하고 함께 만들고,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맙게도 아이는 성장해주었다. 단순하지만 제 의견도 표현할 줄 알게 되었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늘었고, 서툴지만 친구들과의 소통도 늘었다.


 나의 절망은 고작 4년도 살지 않은 아이가 평생 느리게 살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서 왔다. 아이는 성장하는 모습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를 찾을 수많은 우울과 절망들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자세로 씩씩하게 맞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만 장담은 못하겠다. 하지만 끝이 있다는 걸 아는 건, 고비가 찾아온 육아에 도움이 될거라고 장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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