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에게서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엄마로 사는 네 삶도 응원하지만, 글 쓰는 사람이 꿈이었던 그때의 나도 보고 싶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내 꿈과 재능을 응원한다고 했다.
20대 때의 나는 뾰족했다. 글 쓰는 사람이 꿈이어서 다른 일은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뭘 써야 할지도 알 수도 없었다. 작가 지망생이라는 타이틀로 나를 포장하기 급급했고, 남들과 다르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쉽게 좌절했고, 질투했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못난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어떤 방법이든 육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데, 그것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보내며 아이와 지내는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아이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고, 둘째 아이를 원하게 되었다. 두 달 후 또 한 번의 출산을 하게 될 것이다.
‘나’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육아를 하기 전의 나는 내 시간을 얼마나 잘 썼는지, 얼마나 ‘나’로 살았는지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나였다. 육아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만 그것도 ‘나’고, 꿈을 이루겠다고 고군분투했던 그때의 나도 ‘나’였다.
육아를 하면서 내 존재를 아이에게 확인받게 되는 시간이 있다. 엄마를 가장 닮았다 말하고,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찾고, 내 품에서 편히 쉬는 아이를 보며 내가 지금 잘하고 있구나 느낄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이 크고 있구나, 나는 이제야 값지게 ‘나’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글 쓰는 사람이 꿈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엄마로 살다가, 꿈을 못 이룰 수도 있을 거다. 어쩔 수는 없다. 지금은 엄마라는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만이 내가 알고 있는 명확한 답이다. 시시하게는 살지 않을 거라 다짐했는데, 나는 시시하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