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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Mar 13. 2020

우리의 속도

네 돌이 되어서야 말이 터진 아이

표현 언어 하위 1%, 수용 언어 하위 2%. 올해 여섯 살, 50개월이 된 아이의 언어 평가 보고서에 씌어 있는 말입니다. 장애 통합반 서류 때문에 한 검사였고, 진단서를 위한 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찔끔찔끔 맺히는 눈물에 아래 입술을 몇 번이나 꾹 깨물었습니다. 발달이 느린 우리 아이를 두고 누군가는 자폐 스펙트럼이라 하고, 누군가는 언어 장애라 하고, 누군가는 육아 방식의 문제라고 정의 내립니다. 누군가는 발달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발달 치료는 상술이라고 조언합니다.



아이는 2019년 지난 일 년 동안 장애 통합반으로 어린이집에 다녔고, 언어치료와 감각통합수업을 받았습니다. 12월생이어서 느린 거라고 굳게 믿었던 마음이 산산조각 난 해였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말처럼 자폐 스펙트럼일 수도 있고, 장애일 수도, 엄마인 나의 잘못된 태교와 육아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죄책감이었습니다. 내가 잘못 키워서 아이가 이렇게 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느린 아이를 놓고 자존심 때문에 쿨 한 척 “치료하고 있다.” “장애여도 어쩌겠냐.”라고 묻지도 않은 말에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아이는 여섯 살이 되었고, 여섯 살이 되자 굳게 닫혀 있던 아이의 말문이 터졌습니다. 어떤 설명을 해줘도, 어떤 훈육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이었던 아이는 이제 제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효과가 있긴 한 건지 의문이었던 치료 수업들도 눈에 띄게 좋은 결과물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는 “굿나잇, 알러뷰, 엄마 너무 예뻐.”라고 말해 코 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이와 소통이 된다는 것 만으로 선물 같은 나날을 살고 있습니다. 보통은 두 돌에 아이와 이 정도 소통을 하는데, 저희는 네 돌이 되어서야 아이와 소통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시작이겠지요. 아직 우리 아이는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언어, 사회성, 인지와 자조능력… 생각만 해도 숨통이 막힙니다. 아직 2년이 남은 초등학교 입학 걱정에 안절부절입니다.     



한 달 정도 남은 둘째 출산을 앞두고, 마음을 다시 다잡아봅니다.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우리의 속도로 걸어가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고. 쉽진 않겠지만 잘 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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