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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Aug 27. 2020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동생의 코로나 검사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작되면서 여섯 살과 만 4개월짜리 아이들을 키우는 나는 다시 집콕 생활을 시작했다. 나 혼자 집콕을 해야 하는 거면 세상에 그런 천국도 없겠지만 (나는 집에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 에너지가 뽈뽈 넘치는 여섯 살짜리 첫째와 뒤집기와 배밀이를 하느라 용을 쓰는 둘째를 데리고 집에 있는 건 극기훈련과 다를 바 없다.


 코로나가 한창 시작됐을 때, 나는 만삭이었다. 만삭의 나는 첫째와 함께 집에서 생활했고, 그때는 그게 그렇게 우울했었다. 다행히 단독주택에 살아서 옥상에서 하늘을 들여다보고, 첫째와 드라이브 스루에 들리는 낙으로 하루하루 그 시간을 버텼었다. 코로나만 끝나면... 코로나만 끝나면... 하지만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조금 이르게 양수가 터져서 둘째를 출산했다.


만삭 시절, 첫째와 옥상에서 종종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엄마여도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 혼자 있는 생활을 꿈꾸었던 나는, 둘째를 낳고 나니 첫째와 둘이 있는 게 얼마나 편한지 깨달았다. 둘째를 낳고 보니, 마냥 아기 같았던 첫째는 알아서 화장실도 가고, 목욕도 하고, 옷도 입고, 혼자 놀기까지 하는 다 큰 애였다.


 코로나 확진자가 50명 미만이었던 지난 두 달,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녔고 우리는 그 생활에 적응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확산세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2단계로 격상되었고, 3단계가 되냐 마냐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나는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옥상에 만든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

 동생은 바리바리 짐을 싸서 우리 집에 왔다. 동생을 따르는 첫째 덕분에 힘들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누나 내 친구 확진 자래."라고 동생이 말하기 전까지 말이다.


 확진자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동생은 검사 대상엔 속하지 않았는지,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초조했다. 검사를 받고 맘 편히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몇 차례의 통화 끝에 보건소에선 동생에게 검사를 요구했다.  


 급하게 짐을 싸서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간 동생은 오후 다섯 시에 검사를 받았다. 소식을 들은 남편은 급하게 퇴근을 했고, 동생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출근하지 않겠다 했다. 당연히 음성일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동생이 검사를 받으니 초조했다. 만약 동생이 양성이면 우리 가족은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그것은 피할 수 없을 거였다.


 내가 양성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 남편이 양성이면 회사는 어쩌지, 우리가 다 같이 양성이 된다면 그건 또 어쩌지... 밤새 관자놀이와 눈에 통증이 왔다.


 동생은 다음 날 오후 세시에 보건소에서 연락을 받았다. 음성. 검사자가 너무 많아서 결과가 늦게 나왔다고 한다. 남편은 부랴부랴 출근을 했고, 나는 코로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밥벌이를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식구들과 줄지 않은 확진자의 숫자, 누가 확진자인지 알 수 없는 지금... 이제는 누가 어디에서 걸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밥벌이를 멈춘 채 집에서 지내는 것도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무서우니 말이다. 지금으로선 나가지 않아도 되는 식구들은 집에서 지내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사는 게 최선의 방법일 거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도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식구들과 확진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았고, 아이들은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그거면 됐다. 마스크 없이 나갈 수 있는 세상을 언젠가는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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