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가 모여 살게 된 이유
우리가 모여 산지 2년 4개월이 지났다.
남편의 회사를 다니고 있는 시댁 식구들은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한 동네에 모여 살았었다. 신혼이었을 때, 남편은 24시간 일에 메어있었다. 집이 회사 코 앞인데 불구하고 집에서 자는 날보다 회사 리클라이너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흔한 판타지로 가득한 결혼 생활은 우리의 결혼과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남편은 바빴고, 나는 임신으로 예민했고, 판타지와 현실의 괴리로 자주 싸웠고 많이 외로웠다. 그때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시월드, 시어머니였다.
첫 아이의 임신 기간을 떠올리면 시어머니가 해준 음식들이 떠오른다.
단짠의 끝판왕 김치볶음밥, 볶음 김치로 만든 비빔국수, 도깨비방망이로 휘리릭 만드는 감자 샐러드, 말 떨어지기 무섭게 노릇노릇 구워지던 부침개, 돼지고기 팍팍 넣어 만든 김치찌개, 애 낳는데 힘내야 한다고 한 냄비 가득 고았던 곰탕까지. 덕분에 나는 20kg가 찌고 말았다.
첫째의 돌이 지나고, 시누이가 유학을 가게 되면서 시어머니와 나는 더욱 돈독해졌다. 실은 내가 시어머니에게 집착했다. 아이와 단 둘이 하루 종일 있는 게 힘들었다. 그 당시도 남편은 항상 새벽에 들어왔으므로, 나는 남편보다 시어머니의 퇴근을 더 기다리고, 어머니와 무슨 음식을 먹을지 매일 고민했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남편과 결혼을 한 게 아니고, 시어머니의 막내딸로 입양된 것 같다는 소리를 하던 시절이었다.
시어머니는 하루에 한두 시간씩 내게 카페에 가서 가만히 있을 자유 시간을 주었다. 그 덕에 철없던 20대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던 나는 조금씩 엄마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3년 조금 남짓한 시간을 보냈다. 따로 사는 것에 의미가 없었고, 우리는 가진 돈을 모아서 큰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일층은 거실과 부엌, 이층은 우리 가족, 삼층은 시어머니의 방과 옥상이 있는 집에서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게 됐다. 살림을 합치고 일 년이 되지 않아 유학을 마친 시누이가 돌아왔고, 시누이와 시누이의 반려견 도토리도 이 집에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올봄에 우리 집 막내 둘째가 태어났다.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 첫째, 둘째, 나, 도토리. 사람 여섯에 개 한 마리. 살다 보니 식구가 이렇게 늘었다. 우리는 아래층 부부, 위층 모녀라고 종종 서로를 부르며 그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