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신혼여행
그 해 1월엔 시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6월엔 결혼식을 올렸고, 여름의 끝자락에 임신으로 미뤘던 신혼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 앞 카페로 나를 부른 남편은 몰디브의 리조트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랑 지윤이도 데리고 가면 어때?"라고 물었다. "신혼여행에 시어머니랑 시누이를 데리고 가자고?" 어이없어하는 내게 남편은 앞으로 자주 여행을 가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처럼 여행을 많이 가는 사람들에겐 굳이 '신혼여행'이라는 명칭이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체면 차리기보다 몰디브가 더 가고 싶었던 시어머니는 여행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넷이 열흘 간의 싱가폴과 몰디브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그리운 마음에 코 끝이 시큰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싱가폴 점보레스토랑의 칠리크랩을 먹었고, (한국에도 칠리크랩 식당이 들어왔다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다.) 시어머니는 뷔페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몰디브에 갈 거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제는 아득한 그 날의 거리를 걸으며,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웃었고 즐거웠던 것 같다.
몰디브 리조트로 들어가는 날은 이동으로 거진 하루를 다 보내야 했다. 말레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보트를 타고 들어간 리조트에서 5일을 보내며 일 년 치 컵라면을 다 먹었던 것 같다. 임신으로 예민한 입맛을 갖고 있던 나는 매일 비빔면, 짜장라면, 신라면을 번갈아가며 먹었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지만 몰디브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뭐니 뭐니 해도 휴양지가 주는 여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은 이제와 생각해보면 큰 선물이었다. 우리는 물놀이를 했고,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낚시를 즐기기도 했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골뱅이 캔을 비롯해 한국에서 가져온 여러 공산품으로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우리가 머문 신생 리조트에서 나는 만삭의 몸으로 이 곳을 여행한 최초의 사람이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멤버로 간 여행 중에 가장 여유로웠던 여행이었다. 그 뒤엔 아이와 함께였기 때문에 언제나 시끄럽고 겨우겨우 구경하고 먹었던 것 같다. 물론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지만.
남편의 말대로 우리는 세 번의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둘이 몰디브를 갔었고, 결혼 후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출산 후 남편과 둘이 미국 여행을 했었다. 그 기억들은 모두 아득하고 그리운 그때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