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결혼을 결정했을 때, 어머님은 이런 말을 했었다. "내 아들도 미친 눔인데, 그런 애랑 결혼을 하는 너도 정상은 아니야! 알고 보면 네가 제일 이상할지도 몰라!" 보통 어머님들이 예비 며느리에게 할 대사는 아닌데 어쨌든 어머님은 내게 이런 말을 건넸었다. 남편의 엄마 노릇이 해 본 일 중에 가장 어려웠다는 어머님은 우리의 결혼 이후 큰 짐을 덜었다고 좋아하기까지 했다.
결혼을 한 아들은 '옆집 아저씨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어머님은 아들보다 며느리랑 더 가깝게 지냈다.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책, 영화, 드라마, 여행, 살림, 육아, 어머님의 시댁 흉보기, 돌아가신 시아버지와 남편 흉보기로 매일 쉴 틈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님에 대해 말하자면... 역마살도 보통 역마살이 낀 게 아닌 게, 6살 손주와 매일 지구본을 보며 가고 싶은 나라를 그렇게 말씀하신다.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데 본인은 많이 못 가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손이 커서 음식을 많이 만들고, 실제로도 손이 크다. 글도 쓰고, 클래식을 좋아하고, 옷도 만들고, 베이킹도 한다. 다 야매로 배워 약간 부족한 느낌 때문에 (어머님의 출신지인 강원도를 넣어) '강원도 베이킹'이라고 놀리곤 한다.
옆에서 보면 참 신기한 게, 뭐든 쉽게 빠르게 일을 처리한다. 내겐 너무 어려운 문제들도 어머님한테 상의를 하면 별 문제가 아닐 때도 많았다. 남편의 회사를 다니고 있고, 그곳에서 막힌 변기 뚫기부터 회계까지 온갖 일을 다 하고 계신다. 어머님의 꿈은 은퇴 후 양양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는 거다.
처음부터 어머님이랑 친하게 지냈던 건 아니었다. 당연히 어머님이 어려웠고,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나와 가족이 되기 위해 돌이켜보면 어머님은 많은 노력을 하셨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본인보단 자식들이 먼저. 힘들고 어려운 일은 다 본인이 나서서 하셨다. 아이를 낳은 이후, 어머님은 항상 내 밥이 먼저였다. 따뜻하고 맛있을 때 먼저 먹으라고 부추겼다. 여태껏 나는 명절 음식도 김장도 해본 적이 없다. 며느리는 며느리지 어떻게 딸이 될 수 있냐고, 며느리를 딸처럼 여긴다는 건 폭력이라고 말한 어머님은 나를 딸보다 더 상전처럼 여겼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어머님 없이 생활이 불편한 며느리가 되어 버렸다. 종종 주위에서 어떻게 시어머니와 시누이까지 함께 사냐고 대단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상대가 그것을 알아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알아주지 않아도 기꺼이 모든 것을 내줄 수밖에 없는 게 자식이라는 것을, 나는 어머님에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