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던 삽살개

시누이의 반려견 도토리 이야기

by 옥수수

시누이의 반려견 삽살개 도토리는 아기 때부터 컸다. 모든 동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시누이가 도토리를 입양해왔을 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머님과 시누이의 집에 입양된 6개월 남짓했던 어린 도토리는 도시가 낯설었는지 산책길에 다리를 벌벌 떨며 쉬를 쌌고, 동물에 관심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동물을 너무 사랑하는 시누이는 엄마가 싫어해서, 공동 주택에 살아서, 반려동물을 키울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2015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모녀가 둘이 살게 됐고, 어머님은 아빠 생각에 가끔 훌쩍이는 딸이 걱정돼 반려견을 허락했다. 그 뒤로 시누이는 장난감 쇼핑을 끊었고, 반려견의 사료와 간식 값을 벌기 위해 돈을 벌었다. (남편과 시누이는 키덜트족이다.)


금방 도토리는 새로운 집과 가족, 동네에 적응했다. 시누이는 매일 산책을 거르지 않았고, 도토리 몸에 난 작은 뾰루지 하나에도 속상해했다.


애지중지 도토리를 키우던 시누이는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다. 시누이 말곤 개를 케어할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도토리는 모녀의 작은 마당에 방치되었다. 저 먼 곳에서 말도 안 통하지, 식구들도 없지, 음식도 입에 안 맞지, 무엇보다 도토리가 없어 시누이는 종종 울었다고 한다. 아예 키우지 않았으면 모를까, 자기가 좋아서 데려와놓고 방치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고 했다. 결국 시누이는 저 먼 샌프란시스코에 도토리를 데리고 가버렸다.



샌프란시스코는 개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도토리는 미국의 공원들을 산책했다. 딸이 자유롭게 넓은 땅을 여행하고 경험하길 바랬던 엄마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시누이는 도토리는 홀로 두고 외출하지 않았다. 뚜벅이인데 대형견을 두고 외출하지 않다 보니 동네 말곤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도토리 덕분에 시누이는 외로운 타지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시누이와 도토리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님은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당은 도토리의 구역이 되었다. 도토리는 살가운 구석이 없다. 아무리 반가워도 꼬리를 붕붕 흔들고 큰 몸을 일으켜 본인의 기준에선 하이파이브, 상대의 입장에선 밀치기를 하는 정도다. 요즘은 종종 밥도 시누이가 숟갈로 떠먹여야 하고, 더운 날씨 탓에 마당에 이어 차고까지 접수를 했다.


동물을 싫어하는 나지만 계속 보다 보니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회성이라곤 지 눈에 눈곱만큼도 없는 게, 신기한 게 가족들은 다 알아본다. 친정 식구들까지 제 식구라고 생각하는지, 친정 식구들의 차 소리를 듣고 꼬리를 흔들곤 한다. 나는 주로 베란다에서 도토리에게 간식을 던져주는 것 말곤 관여하지도 참여하지도 않는데, 간식만 줘서 그런지 이상하게 내 말을 잘 듣는다. 처음엔 우리 집에 호랑이가 사는 것처럼 두렵기만 하더니, 이제는 나도 모르게 도토리 간식을 쇼핑하곤 한다. 지 밥값을 하겠다고 열심히 집을 지키니 안 예쁠 수가 있나.



얼마 전, 산책을 간 시누이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김수현을 닮은 남자가 시누이와 도토리에게 다가왔다는 거다. 그는 도토리를 봐도 되냐고 물었고 시누이는 당연히 승낙했다. 하지만 도토리는 무려 김수현을 닮은 그 남자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누나를 지키겠다고 으르렁 거렸다고 한다. 지킬 게 따로 있지! 혹시 그 사람이 진짜 김수현은 아니었을까? 시누이는 그 밤, 도토리에게 야속함을 느꼈다.


나는 도토리를 시누이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지내기로 했다. 내게 내 자식들이 귀한 만큼 시누이에게도 도토리가 귀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동물이 싫어도 도토리는 괜찮다. 도토리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언젠가 김수현에 이어 공유를 닮은 남자가 시누이에게 말을 건다면, 그때는 도토리가 누나를 지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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