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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Jul 01. 2022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n차 부부싸움을 멈추게 한 말

 도통 말문을 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아이, 네 살의 아이를 데리고 아동 발달센터에서 언어 치료와 그룹 치료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몇 달 치료를 받다가 치료실을 오가는 중증의 아이들을 보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발달장애 때문에 치료를 중단해버렸다. 그때 아이를 담당했던 언어 선생님은 치료 중단을 알리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때의 나는 심각성을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싶은 상태였다.


 그렇게 아이는 다섯 살이 되어서 어린이집에 갔지만 장애 통합반이 아니면 다니기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때부터 진짜 아이와 나의 긴 긴 치료 생활이 시작됐다. 


 언어와 감통은 홈티로 치료를 받았는데, 일곱 살이 되었던 작년 입학을 앞두고 그룹 치료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다시 센터로 돌아갔다. 몸도 마음도 처음처럼 힘들지 않았다. 


 병원 검사에서도 진단을 내릴 만큼의 발달 지연은 아니라는 소견을 듣고, 일반 입학을 앞둔 아이를 두고 얘가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으려나 고민이 많았다. 왜 걱정은 이렇게도 극단적인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말 한마디 못하는 아이를 매일 상상했고 걱정 때문에 지난 2월은 상상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를 좋아했고, 담임 선생님도 좋은 분을 만났다. 선생님의 피드백으론 3-4월에 아이는 자리에만 앉아있으며 친구들이 노는 걸 탐색하기만 했다는데 5월부턴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놀이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는 팽이 놀이를 했다고 매일 말했고, 4월부터 복용하기 시작한 adhd 약도 부작용 없이 좋은 효과를 봤다. 


 최근 나는 남편에게 n차 부부싸움을 걸었다. 쓸쓸하다고 호소했다. 아이의 발달이 모두 내 짐인 것 같다고, 왜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남편은 일이 먼저이고, 모든 일상이 일인 사람인데 그게 고마우면서도 그럼 내 외로움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평일도 주말도 없는 남편과 살아야 하나 막막함이 밀려왔다. 부쩍 아빠와의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화딱지가 나기도 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집에 있질 않는 아빠의 단점으로 아이는 아들과 딸과 놀아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놀이 치료 선생님이 엄마와의 애착은 끝났으니 아빠와의 애착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 것도 한 몫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핑계이고 내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하나 둘 입봉을 하고, 작가가 되어 책이 나오는데 나는 치료실을 전전하고 있으니 초조했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던 것 같다. 영어를 고민하는 다른 또래 아이들의 엄마들을 보면서 영어는커녕 우린 끝없는 치료를 하고 있는데... 하는 열등감도 있었을 거였다. 


 며칠 남편과 대차게 싸웠다. 대차게 싸운 끝에 남편은 갑자기 아이의 센터에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응? 왜? 

 상상도 못 한 행동이라 놀라움이 앞섰다. 남편은 키즈카페도 아이의 병원도 몇 번 안 가본 사람이었다.

 그냥, 일종의 반성이야.

 그래서 어제 남편과 아이와 아이의 센터를 함께 가게 되었고, 개인 치료 후 1시간 20분 대기, 그룹치료까지 긴 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재운 뒤 남편이 말했다. 

 미안해. 너 혼자 힘든 싸움을 하게 둔 것 같아. 센터에 있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어.

 세상에! 정답을 말해버리다니. 남편을 향한 원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한테 필요한 말이 저 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이번 주말도 남편은 일로 우리와 함께할 수 없지만 그게 중요치 않게 되었다.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것은 공감해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 작년부터 시작한 아이의 놀이치료를 2주 뒤 종결하기로 했다. 놀이치료를 하면서 큰 수확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하기 시작한 것이고, 여러 자극이 있었겠지만 친구들과의 놀이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아이를 보면 사회성이 안 좋은 아이가 아니라 말이 느려서 어떻게 상대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몰랐던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말과 사회성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5세부터 시작한 언어, 감통은 올해까지 유지할 생각이고 체육은 일단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언어는 말이 늘면서 생긴 말더듬과 어휘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체육은 개인과 그룹을 하고 있는데, 기능을 올리는데 집중하고 있고 그룹을 통해서 친구들과의 놀이를 배우는 중이다. 

다음 주부터 아이는 방과 후 수업을 듣는다. 1학기 내내 신청해달라고 졸랐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냥 들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무언가 배우고 싶다고 말한 아이가 대견하기만 하다. 

서서히 일반 친구들이 있는 수업으로 옮겨갈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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