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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트 Sep 30. 2019

아이와의 여행에 대하여


뉴욕여행은 결혼한지 4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와 처음으로 해외에서 함께 지내본 경험이었다.

그전에 국내여행은 두어번 한 적이 있다. 아이가 돌일때와 두돌이 되지 않았을때.


처음 아이를 놓고, 몇개월을 키우는 과정은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다.

지금도 스스로에 대해서 '난 소중해, 나라면 이정도는 해야지(?),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가 있어?' 등등 딱히 내세울게 없으면서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10여년 전인 그땐 뭐..눈뜨고 못볼 정도였을 듯하다.

이 세상에 나밖에 없고 아직 혈기 왕성하고 배려심도 현명함도 부족했던 그때의 내가 아이를 놓고 키우는 것은 정말 개과천선하는 경험에 가까웠다.

모든것은 아이 중심이 되었고, 나는 나를 생각해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둘째, 셋째를 키우는 경우라면 이미 육아의 과정을 알고 

'이맘때쯤이면 걷기는 하겠네. 여행은 가능하지. 좀있으면 외출할 수 있겠다. 이제 키즈카페에 가볼까..'등을 예상을 할 수 있는데 초보엄마에게 육아는 정말 예상할 수 없는, 황당하면서 정신 육체적으로 힘든 경험인듯 하다.

엄살이 많고 인내심이 턱없이 부족한 나는 6개월 정도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7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거의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주 오열을 하며 단음식과 카페인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육아가 끝이 없을 것만 같아 평생 이렇게 지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우울한 생각과 불만들이 쌓여 도저히 여기서 못살겠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 나가.'라는 세글자 적힌 포스트잇을 남겨두고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 기저귀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보통 친정에 많이 가던데 나의 경우 친정에 가고 싶진 않아서 좀 생각해본 결과 부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그때 당시에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라는 신세계 백화점에 가서 원피스(빨간..)를 한벌 사입고 부산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관광을 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바글바글한 시티투어버스 안에서 나는 아기띠 속의 아이와 한몸이 되어 창밖을 보며 구경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풍기는 나를 향한 딱한 시선이 느껴졌다.

맞은편 어린 커플이 나를 씁쓸한?시선으로 쳐다보았고 그 주변 사람들도 흘끗 흘끗 보았다.

'결혼해서 왜 저러고 살아?.. 애데리고 혼자 웬여행?..신랑은?...어지간히 나오고 싶었나보다..' 등등의 느낌으로 받아들여 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밀면을 먹고 광안리와 깡통시장을 돌아다니며 오랜만에 세상구경을 하였다.

나를 위한 선물같은 여행이란 생각에 잠은 호텔에서 잤다.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기라성같이 생긴 눈에 띄는 호텔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향했는데 부산지형이 산이 많아서인지 그 호텔은 사실상 꽤 높은 고지에 위치해 있어서 건물은 가까이 보이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황당한 호텔이었다. 도깨비한테 홀린것 같은 기분으로 들어서니 건물도 도깨비성 같은 느낌으로 특이했다.

나중에 코모도 호텔이라는 것을 알았다.

힘들게 올라간후 이렇게 생긴 호텔을 마주하니 무언가에 홀린 기분. (광고 아님)


첫번째 아이와의 여행은 설렘반 피곤함 반이었다.

어딜가나 아이가 울까봐 그래서 피해를 주고, 주목을 받을까봐 신경이 쓰였고 이유식과 기저귀도 틈틈이 신경써야 했다.

맘편히 먹지 못했고, 보지 못했다.






두돌이 못되어서는 하동으로 갔었다.

더운 날이었는데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바로옆 광양엘 갔고 구례에도 갔다.

어떤 절에 가려고 버스를 타고 낮은 산을 올랐는데 아이는 흙놀이에 신경이 팔려 결국 절에는 오르기를 포기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흙놀이를 하게 두었다.

땅 관찰 중인..


산수유꽃 머리에 꽂은 아들.


그때부터 목적지에 의미를 두지 않고, 아이의 관심사에 따라 여행하는 습관이 생겼다.

같이 하는 여행이니 저도 즐길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그 아이는 목적지엔 관심이 없고 사진찍을 생각도 없다.

먹고싶으면 먹길 원하고 장난거리가 있으면 앉아 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걸 내가 방해하면 아이는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주장하는 행동을 보이고, 그럼 우리의 여행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아이와의 여행은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주가 된다. 아이가 어릴수록.

나의 아이는 3세이므로 나는 그 아이가 이끄는 곳으로 가느라 내가 생각하는 관광이나, 쇼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관광에 욕심 안내고, 아이가 가는 곳이나 아이의 타임에 나를 맞추는 노력을 했고, 그랬더니 여행이 조금 편안해졌다.

뉴욕에 가서도 그 패턴을 따랐다. 

'비싼 비행기를 타고 온 곳이라 본전을 뽑아야 겠어!' 라고 생각하기 보단

물 흐르는 것 같이 자연스럽게, 피곤하면 쉬고, 아이가 정차하면 나도 멈춰섰다.


이 여행에서는 이틀을 지내다 왔는데 첫번째는 가격이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에서 묶었다.

평일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공동으로 지내는 곳이다 보니 아이가 내는 소음이 신경이 쓰여 마음편히 있을 수는 없었다.

둘째날은 지리산 아래에 위치한 리조트에서 묶어서 그나마 마음은 편했다.





첫번째 여행에서는 아이도 어렸고, 아이와의 여행 경험 자체가 처음이다보니 힘든 면이 많았다.

두번째 여행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아이와의 여행은 늘 마음 졸이고, 신경쓸게 많아 나는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없었고, 집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케어하느라고 진을 뺐다.

그렇게 고단하고 아이 위주의 여행이었지만 집에 있는 것 보다 나았다.

또 여행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다시 집을 포근하게 여기게 해주는 기능?도 있었다.

역시 집이 최고야..라며.

일상으로 돌아와 여행지를 추억하며 아이와 비교적? 편히 불만없이 당분간은 지냈고, 또 슬슬 갈증을 느끼거나

무언가 쌓여가기 시작하면 짐을 꾸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뉴욕여행은..

 '정말 도저히 못참겠어. 난 한국에 안맞나봐. 다른 나라에서 한번 살아볼까?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을 거야...또 둘째 낳으면 당분간 움직일 수 없을 테니.'라는 생각에서 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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