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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pr 02. 2016

13초의 어두운 파리와 '한강'

작가 '한강'을 말하는 겁니다

2012년 파리를 교환학생지로 선택했다. 낭만, 예술, 연애의 로맨틱한 도시! 파리에 산 지 2개월 쯤 됐을까, 집에 가기 위해 올라탄 지하철은 파리의 풍광을 탁 트이게 보여주며 지상으로 달렸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참 아름다운 도시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다음 역에서 내렸다. 뭐지? 주변을 둘러봤더니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자신의 중요부위를 꺼내놓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아, 정말 미친듯이 참 아름다운 도시다.” 나는 황급히 사람들을 따라 내려 지하철 옆 칸으로 옮겼다.


어느 플랫폼이든 여행 섹션에서 파리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여행지로서의 파리는 언제나 예쁘고 설레는 ‘묘령(20살 안팎의 여성)’의 도시다. 샹젤리제의 개선문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도시를 보며 나 또한 그 아름다움에 적지 않게 감명을 받곤 했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닳고 닳은 지하철 타면 ‘삶의 터전’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봤다.


파리의 지하철은 버스처럼 좌석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갑갑하고 복작복작하게 되어있다.

무슬림의 암내, 떡진 백인의 정수리내,
그리고 동양에서 온 나의 마늘 냄새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뻔질나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나름 익숙해지고 나니 ‘파리의 이미지’가 아닌 ‘파리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랩에 소질이 없어 보이는 지하철 6호선의 힙통령. 위태로운 듯 갈구하는 듯 지하철 플랫폼에서 키스를 하는 남녀. 지하철 창 밖 밥 사먹으려고 맛도 없는 빵집 앞에 길게 줄 선 직장인들. 고개를 처박은 젊은이를 괴롭히는 막차의 취객들. 돈을 벌기 위해 미니 에펠탑 열쇠고리를 팔다가 경찰이 쫓겨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는 상인들. 지하철 문이 열릴 때 맞춰 문 앞에 선 사람의 아이폰을 강탈하는 남자...


분명 지하철 칸칸이 들어찬 사연들이자, 파리라는 현실에서 부닥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은, 곧 어두워지면 그늘질 것 같은 얼굴들을 띠었다. 나는 파리의 지하철을 보며 문득 서울 지하철 4호선을 묘사한 시인 ‘한강’의 산문이 생각났다.


전철 4호선,

선바위역과 남태령역 사이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다.

숫자를 세어 시간을 재보았다.

십이 초나 십삼 초.

그사이 객실 천장의 조명은 꺼지고

낮은 조도의 등들이 드문드문

비상전력으로 밝혀진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

나는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파리해보인다.

기대지 말라는 표지가 붙은 문에 기대선 청년은 위태로워 보인다.

어둡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


누구나가 한 번쯤은 떠나보기를 원하는 파리에도, 잠시 멈춘 지하철 속 십삼 초간의 어두움을 지닌 사람들은 존재했다. 우리를 흔드는 그 어려움들은 도시라는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삶이라는 시공간의 문제일 것이다.

그토록 ‘파리’해 보이는 ‘파리’ 사람들이라니.

낭만의 정의를 ‘민낯이 깨닫게 해주는 삶의 통렬한 진실’로 바꾼다면 파리는 언제나 낭만적인 도시일 수 있을까.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리는 파리 여행기들을 보며, 6개월 간의 파리 생활에서 나는 무엇을 건너온 것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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