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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28. 2016

이모티콘과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내가 NASA도 아닌데

최근 새로운 사람을 알게 돼 종종 연락을 하며 꾸중을 들었다. 이유는 ‘이모티콘을 자주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너무 딱딱해 보인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취직한 이후 나답지 않게 이모티콘을 참 많이도 썼다. 팀 혹은 파트 카카오톡 방에서 폭죽 터뜨리는 고양이는 참으로 자주 고생해주었다. 진정한 사회생활 도우미 카카오 프렌즈들이 있으면 조금 더 싹싹한 신입처럼 보였다. 새로운 사람한테도 그럴 걸 그랬네,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한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상대방에게 관계의 위험부담을 떠안으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점심으로 파스타 어때?”라고 물었을 때, “응, 좋아”라고 답하는 것과 “응, 좋아(강아지가 벽을 잡고 좌절)”이라고 답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후자로 답해주면 상대방은 99프로의 확률로 다른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모티콘들이 나 대신 웃고, 울고, 춤까지 춰주는 이 세상은 참으로 간편하다. 완벽하게 번역된 책, 그것도 부드럽고 읽기 좋은 감정의 책을 건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매개들이 세세하게 나뉜 이 세상에서 문득 거친 번역의 추억을 생각해본다. 대학생활 오래간 친구였던 녀석이 있었다. 카카오 프렌즈가 이 세상에 없기 전 만난 그 친구는 얼마나 표현을 못하는지 “하”라고 운을 떼더니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기계였다. 별명이 ‘사무적인 개XX’이었던 그 애는 술도 못 먹어서 좀 취한 뒤 속에 있는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 이내 잠들었다. 가끔 나는 우울해 보이는 그 녀석의 표정을 보고 왠지 어울릴 것 같은 감정의 단어 하나, 하나 꺼내가면서 물었다. 감정 통번역 대학원을 재학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나에게 감정 통번역학 석사나 박사를 땄냐고 묻는다면


애초에 쌍권총 차고 자퇴했다고 답하겠다. ‘소우주’라는 인간의 감정을 완벽히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부터가 무모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무엇이 ‘사무적인 개XX’ 포함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조금 더 다정한 감정의 파동을 일으키는지 알게 됐을 뿐이다. 석사도 따지 못한 내 감정학 가방끈은 여전히 짧지만 그저 아주 약간 어른이 된 것이다.


저번 회식 자리에서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인 차장님이 동기와 나에게 웃으면서 물으셨다. “이모티콘 쓰느라 힘들지 않냐”며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사무적인 개XX’에게 이모티콘을 쓰라고 단 한 번도 귀찮게 굴지 않았다. 사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emotion을 표현한다는 emoticon은 상대방이 읽기 좋은 아주 간편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감정은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물론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저 상대방의 감정이 조금 더
따뜻한 진동으로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무모한 탐구정신이 아니라 아주 작은 배려심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감정이 조금 잔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딱 그정도를 바라고 해낼 수 있다.


김용택의 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의 화자는 그런 배려심을 지닌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난 널 좋아해, 넌 어떤데? 지금 네 감정에 대해 자세히 말해줘."가 아닌 "예쁜 달빛이 떴어."란 전화를 했다. 달이 감정의 축을 조금 더 환하게 옮겨놓을 것임을 아는 이 현명함, 전화 건너의 누군가가 궁금해지는 시다.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때 아름다운 소통이 생겨난다.


나는 요새 그 누군가를 본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무적인 개XX’가 우울해 보이면 뭔 생각하냐고 묻지 않고 노래나 영화, 시를 추천한다. 그래도 래 친구를 했는지 취향 적중률이 높은 편이다. (아닐지도) 사실 요새도 종종 무슨 감정일지 궁금하긴 하다. 그러나 이내 까먹는다. 내가 나사도 아니고 소우주의 비밀을 오랫동안 고민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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