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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22. 2016

우리가 봄을 사랑하는 이유와 '둘'

봄은 누구나 편애하는 계절이다

긴 터널을 빠져 나온듯한 봄이다. 영원히 겨울에 갇혀있을 것 같더니 어느새 광화문 광장에 정직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정해진 수순에 따라 세상이 더 따뜻해지면 벚꽃도 필 테고 사람들은 더욱 봄을 아낄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픈 손가락인 봄은 누구나 편애하는 계절이다.


우리는 봄이 ‘무언가 피어 오르리라’는 찰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사랑한다. 처음 상경한 서울의 지하철이 한강을 지나갈 때, 차가웠던 누군가의 표정이 웃음으로 쏟아질 때, 나는 내 인생에서 봄과 같은 순간을 봤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혹은 모르기에) 무언가 일어나리라는 미지근한 기대감들이 감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의 선택으로 가능성들과 삶의 실질적 시공간을 교환하고 나면 더워서 숨이 차기 시작한다. 기대하던 것들은 절절 끓은 아스팔트가 피어 올린 신기루인지도 모르겠다. 봄, 다 어디 가고 여름만 남았을까? 심보선의 시 '둘'은 강렬한 선택지가 공존하던 인생의 봄과 저버린 사랑의 가능성을 아쉽게 써 내렸다.

두 줄기의 햇빛
두 갈래의 시간
두 편의 꿈
두 번의 돌아봄
두 감정
두 사람
두 단계
두 방향
두 가지 사건만이 있다
하나는 가능성
다른 하나는 무(無)

심보선, 둘


우리는 봄을 사랑한다. 그러나 진실로 가장 애틋한 것은 삶이 이렇게 자연스레 지나가리라는 것을 몰랐던 그때의 스스로이다. '빛'나는 찰나만 알고 빛나는 '찰나'는 몰랐던 나의 그날들. 봄은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더욱 아프다. 

맞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픈 손가락인 봄은 누구나 편애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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