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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18. 2016

수줍디 수줍었던 윤동주의 사랑

문학청년의 연애 이야기 (3)

1편 시인 이상의 연애를 '너저분한' 연애 이야기라고 명명했었다. 윤동주는 이상의 반대척에 있는 연애 이야기를 가졌다. 왜냐. 그는 너무나 맑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갓 국문학과에 진입한 시절 윤동주 전집을 구매해 읽은 적이 있다. 그 시집에서 가장 선정적인 시는 바로 '가을밤'이라는 시였다. 이 시만이 유일하게 누군가의 복숭아스러운 엉덩이를 연상하기 때문이었다.


가을밤

궂은비 내리는 가을밤

벌거숭이 그대로

잠자리에서 뛰쳐나와

마루에 쭈그리고 서서

아인 양하고

솨- 오줌을 싸오. (1936.10.23)


동심이 떠오르는 이 시가, 윤동주의 시 중에서 유일하게 속살을 떠올리게 하는 시였다. 그만큼 그는 따뜻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와 마찬가지로 그의 연애사 또한 매우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일정부분에 있어서는 좀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연애에 '부끄러움'이 많은 청년이었다.


사실 그는 연애 외의 방면에서는 나름대로 뚝심 있는 남자였다. 시에서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 것도 시대를 바라보는 자신의 꼿꼿한 신념이 존재했기에 나온 것일테다. 올곧은 신념은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분명했다. 윤동주의 아버지가 "문과가면 뭐먹고 살건데? 굶어죽기 딱 좋다. 고시 공부를 하려면 법대를 가야할 거 아니냐~"라고 하며 문과 진학을 말릴 때도 밥 몇 끼를 굶으며 자신은 문과를 가야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문송합니다'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었나보다.)

하지만 연애에서는.. 음, 진심으로 좀 소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윤동주의 후배가 "내가 윤동주의 연애사를 싹~다~ 밝히겠습니다!"라고 전언을 하고 나섰지만 그 후배가 고작 한 말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여자가 먼저 호감을 표해도 수줍어하면서 피했고, 여자에 대한 진지한 호감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뭐 아무것도 안 밝힌거나 마찬가지인 이런 주장을 굳이 왜 했는지 의문이지만은 저게 사실이니까 할 말이 없다. 

그 후배가 여기 있으려나?

에피소드는 더 있다. 한 번은 여동생한테 '이 여자 어떠냐'고 사진을 보여주기에 "와! 우리 동주가 드디어 결혼하는건가!"라고 생각하며 가족들이 기뻐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그 여자 약혼함. 아님."이라고 전해온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소개팅녀 프로필 사진 보여줬다가 파토난 것과 마찬가지인 걸까? 그리고 또 한 번은 여학생과 대학에서 우연히 둘이서만 영작문 수업을 듣게 된 날이 있었는데, 한참을 끙끙 대다가 그 여학생을 바라보며 "두 명밖에 없는데 틀리면 창피할 것 같아요."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쯤되면 이렇게나 소심한 그가 쓴 시에 꾸준히 등장하는 '순이'라는 여성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윤동주의 22세, 연세대 1학년 때 처음으로 시에 등장한 '순이', 심지어 시의 제목은 '사랑의 전당'이다. 그런데 이 '순이'라는 여자랑도 잘 안 된 모양이다.


사랑의 전당

(전략)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러운 촛대에 열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1938.06.19)


왜 '순이'라는 여자는 시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앞문과 뒷문으로 쭉 찢어져 동주와 이별한 것인지 당최 알수가 없다. 교과서에서는 "주제: 이뤄질 수 없는 조국 광복에 대한 좌절감, 하지만 그 속에 느껴지는 꿋꿋한 헌신", "순이" 밑줄 긋고 조국 광복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쓴 시임에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다른 시 '소년', '눈 오는 지도' 등에서도 짝사랑과 이별을 암시하며 '순이'가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41년 연세대를 졸업하며 쓴 시 '눈 오는 지도'에는 '순이'가 떠나버렸다며 슬퍼하고 있다.


연인에 관한 자료가 풍부한 이상, 백석에 비해 윤동주의 연애사는 베일에 쌓여있다. 맑고 티없던 청년, 부끄러움이 많았던 그 청년의 '그 여자'가 궁금하다. 그러나 '그 여자'라는 시를 읽으면 알 수 있듯 그는 정말 꽁꽁 숨기고 싶은지도 모르니 굳이 파헤치는 것은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여자라고 제목은 지어놓고 사과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는 그 순수한 청년. 그 모습이 바로 윤동주 그 자체였나보다.


그 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던 손님이 집어 갔습니다. (193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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