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은말고이응 Mar 18. 2016

시인 백석, 그의 '나타샤'는 누구?

문학청년의 연애 이야기 (2)

백석은 잘생겼다유학파이고조선일보에서 일했다시도 겁나 잘 쓴다. 1900년대 초 한국에서 문학이 가진 위상을 생각해봤을 때 (식민지 조선에서 잘 나간다는 자들은 다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었다지금으로 따지면 랩퍼들빈지노나 지코실력도 있고 폼도 나는 이런 트렌디한 이미지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잘생긴 작가 백석은 수많은 여자들이 탐내는 남자였을 것이다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는 카사노바이었다그런데 저번 편의 이상처럼 이상한 놈!’이라고 마냥 욕하기는 힘들다그는 자의적 카사노바이었다기보다는 타의적 카사노바이었기 때문이다.

백석은 결혼을 총… 보자.. 하나, 둘, 셋, 넷.. 어휴! 많이 했다. 돌돌돌싱까지 경험한 백석. 그러나 그가 개차반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백석의 부모님은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우리 아이와 헤어져주게’를 시전하시는 분들이었다. 금지옥엽 잘생긴 아들이 잘못된 여자와 결혼할 것을 염려한 그의 부모님은 26세 때와 28세 때, 총 2번의 결혼을 강요한다. 백석은 첫날밤을 치르지 않은 채 도망가거나 결혼 생활을 대충해버린다. 무책임하긴 한데, 마냥 백석을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원치 않은 결혼인데.


당시 백석은 ‘김영한’이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져있었다. 몇 번의 억지 결혼 속에서 그는 기생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사랑을 나눴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여인, ‘자야’가 바로 백석이 쓴 최고의 명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주인공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알고 보면 자야 스스로 한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쓴 회고록, ‘내사랑 백석’에서 “자야만이 유일한 백석의 사랑이며, 자신의 그 시의 주인공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백석이 진정 결혼까지 하고 싶어한 여인은 아예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24세 백석은 한 결혼식 피로연에서 자기의 직장 동료 ‘신현중’과 함께 ‘박경련(란)’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통영 출신이었는데 백석은 그녀의 마음을 얻어 결혼을 하기 위해 세 번이나 통영을 찾아간다. 박경련의 부모님과 아는 사이이었던 신현중은 백석과 박경련의 결혼을 위해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백석에 대해 온갖 좋은 말을 한다. 진정한 벗이 아닐 수가 없다. 현중: “석이가 참 괜찮습니다. 석이 어머니가 기생이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바르게 컸다니까요!” 경련이 부모님: “뭐? 엄마가 기생 출신이라고? 백석한테 우리 딸 못 준다네!” 현중: “헐. 어떡하지. 제가 정말 말실수를 했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가 박경련양과 결혼을 할까요? 하하하!” 경련이 부모님: “뭐, 그렇게 하지!”

이렇게 자신의 첫사랑을 친구에게 빼앗겨버린 백석. 왠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사건이다. 백석의 아름다운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이 구절이 바닷가에 사는 한 처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기분탓일까?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 <흰 바람벽이 있어> 中 


백석은 일련의 사건들 이후 북한에서 두 번의 결혼을 더 한다. 세 번째 부인은 피아니스트 문경옥, 그리고 네 번째 부인은 마지막까지 함께 살았던 리윤희다. 네 번의 결혼, 숫자만 따지고 보면 이런 천하의 카사노바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친구에게 원하던 결혼 상대를 빼앗기고 억지로 몇 번의 결혼을 하게 된 백석에게 동정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잘생겨서 괜히 용서해주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언급이 적고, 북에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된 작가.전통 혼인 이데올로기와 자유 연애 사이에서 헤맸던 남자. 토속적인 한국의 언어를 누구보다 모던하게 살려낸 천재. 그의 면면들이 1900년대 근대 어딘가를 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오감도'의 이상, 너저분한 그의 연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