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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16. 2016

'오감도'의 이상, 너저분한 그의 연애

문학청년의 연애 이야기 (1)

문청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글을 썼든 간 그건 그들의 실제 연애와 하등 상관이 없다. 그들은 '너저분함'이라는 연애의 방면에서 현대인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이 매거진의 첫 번째 주인공은 '오감도'의 '이상'이다. 이상은 가히 근대문학계에서 손가락에 꼽는 찌질이다. 캐면 캘수록 창의적인 방식으로 찌질하게 연애를 꾸려나간 흔적들이 가득하다. 근대의 지니어스 이상의 연애사에는 상대방을 창피하게 만드는 그만의 미학이 담겨 있다.


이상의 기본 스펙을 알아보자. 그는 고학력자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좀 좋은 대학 건축학과 학생쯤 되려나 싶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그는 뛰어난 학벌 덕인지 직업도 좋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공무원. 그것도 핵심 국가기관의 공무원이었다. 그가 일한 곳은 무려 총!독!부! 총독부에서 건축가로 일하던 멋진 모떤-뽀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직업적으로 멀쩡한 그에게 수많은 모떤-걸들이 대쉬를 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왜냐? 그는 신문에 "이 식민지의 미친놈은 나야!"라고 셀프 인증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 잘생기지 않은 얼굴도 이유 중 하나였을 듯 하다.



이상은 당시 대표적인 신문인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연재한 몇 편의 시는 당시 독자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줬다. 이상의 이 시들을 보면 읽기도 전에 읽기 싫어지는 엄청난 비쥬얼 쇼크가 느껴진다. 심지어 숫자로만 쓰여진 시도 있다. 이상이 건축가였기때문에 일부러 시각적 효과를 노리고 이렇게 썼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실제로 그는 소설 '날개'의 첫 발표 당시에도 초반 도입부를 굳이 두 줄짜리 테두리를 쳐서 공개했다. 만약 정말 시각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진정 천재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지금봐도 충격적인데 이제 막 모던놀이하는 조선의 사람들에게 이런 비쥬얼쇼크형 시가 받아들여질리가 없었다. "악마의 시!" "이 작가 미친 놈아냐!" 빗발친 독자들의 항의가 밀려오기 시작하는데 이상의 배짱은 그래도 나름 두둑했다. "그만 쓰래서 그만 쓴다." 이상이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한 줄이다.



어쨌든 사회로부터 자신의 천재성을 거부 당한 그가 천착한 곳은 '금홍'이라는 기생이였다. 실제 사귄 것은 고작 몇 달이라는 설이 있고, 정확한 기간은 잘 모르겠지만 이상에게 매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쓴 여러 편의 소설 속에서 기생이 꾸준히 나오고 그 기생의 모델은 금홍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의 연애가 뮤즈와 작가 뭐 어쩌고 이런 류의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상상한다면 이상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앞서 말했든 이상은 근대에서 손꼽히는 찌질이이자 천재니까 말이다. 이상의 대표적인 행각 2가지를 꼽아보자. 


첫 번째, 이상은 매 맞는 남친이었다. 그는 학벌이 좋았지만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여는 족족 가게와 다방을 시원하게 말아먹으니 그런 방면에 능력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래서일까, 작가 '김유정'이 "이상이 금홍에게 뺨을 맞고 울면서 자신을 찾아온 적이 있다"는 말을 남긴바 있다. 금홍은 이상과 함께 운영하던 '제비다방'이 망해가자 폐병에 걸려 골골 대는 이상을 때리고 이 남자 저 남자 어울리고 다니며 놀았다고 한다. 두 번째, 이상은 어쩌면 매 맞아도 싼 남친이었다. 이상의 소설 '봉별기'에는 '금홍'을 벗에게 권하는 장면에 나온다. 한 번 잠자리를 같이하라 이거다. 실제로 우정을 위해서 금홍을 한 번 넘겨주려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카더라도 있다. 역시 이 식민지의 미친놈은 이상이다. 뺨 맞은게 화나서 봉별기에 그렇게 썼던건지 아니면 이래서 뺨을 맞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상이 멋진 인간 군상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금홍에게 여러모로 호되게 당하고 난 뒤에도 이상에게 브레이크는 없었다. 사업병에 걸려 몇 번의 다방을 후르륵 후르륵 시원하게 말아먹은 그는 한 카페의 여급 '권순옥'을 만나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이상은 금홍을 잊지 못하고 그녀와 만나면서도 금홍과도 만난다. 이러니 여자가 안 떠나고 배겨? 권순옥은 자신과 사겨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자살 소동을 벌인 '정인택'이라는 사내에게로 떠나버린다. (이상도 권순옥에게 그 남자한테 가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음독기도를 한 그 놈도 정상은 아닌거 같은데 이상이 이 사람한테 졌으니 얼마나 비정상인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상은 사업병을 고치고, 한 문예지에 자리를 잡는데, 그 곳에서 변동림이라는 한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한다. -Cafebene- 


로 해피엔딩이 되면 이상이 아니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일본으로 도망! 자유를 찾아서! 사실 변동림은 '나 이대나온 여자야~'였다. 금홍에게 뺨을 맞을 정도로 관계에서 나약했던 이상이 똑똑한 여자를 만나려니 얼마나 색다르게 불안하고 힘들었겠는가. 실제로 변동림과 살던 후기 이상의 소설에는 앞선 소설보다 여자의 외도를 의심하고 추적하는 내용이 더 많이 담겨있다. 벗에게 쿨하게 금홍을 추천했던 그가 이러한 심경의 변화를 겪다니 재미있는 포인트이다. 


정리하자면 금홍, 권순옥, 변동림이 이 세명의 여자가 크게 이상의 삶을 스쳐간 연인들이었다. 그러나 이 세 여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이상의 행각들이 그의 연애사를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지는 아직 우리가 알 수가 없다. 물론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발견된 '최정희'를 향한 이상의 러브레터에서는 낯뜨겁고 열정적인 이상의 언어를 볼 수 있다.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한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중략)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정희는 그때 '국경의 밤'을 쓴 시인 김동환과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의 편지를 모두 찢어버렸다고 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은 최정희에게 거절 당한 것이 한으로 남았는지 그의 마지막 소설 '종생기'의 여자주인공을 '정희'라고 칭하고, 두 남자와 문란하게 노는 캐릭터로 설정한다. 그리고 찌질함의 최고봉은 소설에서 '정희'가 '이상 선생'을 따라다니는 것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뭐, 이 포인트에서 그의 찌질함을 앞선 톤과는 달리 조금 진지하게 욕해보고 싶지만 참도록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소설을 쓰고 4개월 뒤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이상의 연애는 비록 좀 너저분하고 그랬지만 오랜기간 그의 작품에 정말 많은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요절했기에 그의 천재적인 작품을 더 볼 수 없어 국문학도로서 아쉽지만, 그 짧은 생애동안 인생 한 번 제법 문인답고 기깔나게 살다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폐병으로 골골거릴 때 아픈 자기를 뺨 때려줄 여자도 있었고 죽기 직전까지 사랑을 쏟을 여자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 편은 앞서 언급한 '최정희'에게 러브레터를 건냈던 또 다른 남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조선 최고의 카사노바이자 국문과 미남 삼대장, 백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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