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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15. 2016

도시 공간과 '기억할 만한 지나침'

1.98제곱센티미터, 이 작디 작은 곳

기형도처럼 광화문 주변에 출근한지 7개월이 되었다. 가로 1.8m, 세로 1.1m 가량을 꽤 괜찮은 책상을 얻었다. 내 자리다. 짧게는 7시간, 길게는 12시간을 훌쩍 넘게 이 공간에서 지낸다. 영문 폰트구입부터 협력사에의 연락까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단어들이 이 곳에 가득 쌓여있다.


이 도시 공간은 호기심을 잃기에 딱 좋다. ‘볼 것’이라곤 다섯 구의 콘센트가 박힌 미색 벽, 모니터링을 위한 여섯 대의 TV, 차곡차곡 쌓인 출력물들이다. 이 것들이 ‘볼 것’에서 ‘그냥 있는 것’들의 위치로 격하되기에 7개월은 차고도 넘칠 시간이었다.


회사를 다닌 지 6개월쯤 됐을 때였을까, 채널에이에서 교보문고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한 사내가 길바닥에 엎드리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차장님께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사람이야?” 나는 한 번 돌아보며 “사람이겠죠?”라고 대답했다. 사내는 자신의 등에 푯말을 세우고 해고에 관한 시위를 하고 있었다. 호기심은 딱 거기까지 닿을 만큼이었다.


으레 출근하고 퇴근하는, ‘으레’라는 단어로 가득 찬 1.98제곱센티미터짜리 나만의 도시 공간, 그리고 광화문은 그렇게 ‘볼 것’이 아닌 ‘그냥 있는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광화문은 나에게 다섯 구짜리 콘센트였다. 대한민국의 광장이 아니었다.


호기심을 잔뜩 잃은 채 야근을 하는 날, 문득 옆 건물을 바라봤다. 현대해상건물의 사무실에 전등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며 동기와 “야! 저기도 야근한다!”고 낄낄댔다. 다시 건물을 돌아봤다. 사람의 실루엣은 없을까? 문득 광화문을 거닐었을 직장인 ‘기형도’의 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 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퇴근길, 광화문 주변에서 기형도는 어느 건물을 지나다 우는 사내를 발견했다. 처음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마음 깊이 사내의 슬픔에 공감하게 된 모양이다. 삶을 잡아먹는 사회에 절망해 몸을 엎어뜨린 사내에게 내가 한 번의 눈길을 줬다면, 기형도는 그렇게 우뚝 서있었다. 어둡고 추운 밤에 말이다. 다시 회사의 미색 벽과, 광장의 노란 리본을 바라본다. 옅은 노란 빛을 띠는 그 벽이, 내 마음인 것 같아 숨막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기심을 잃고 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살게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야만 해.” 질문 없이 받아들이는 법을 체득했다. 그렇지만 광장에서 우는 사람들을 위해 “당신은 어리석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자격을 잃어간다. 1.98제곱센티미터, 이 작디 작은 도시 공간에서 창 밖을 바라본다. 광화문이 아득하게 멀리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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