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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Jun 14. 2016

초여름

시 같은 날씨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어스름이 내려올 때 이 계절은 갸륵하다. 착하고 장하기 그지없다. 정말로 초여름은 넓은 마음을 지녔다. 말도 안 되게 부쩍 길어진 해. 덕분에 전에 없던 순간들이 생겨나고, 몇 달 전 캄캄했을 그 시간, 이제는 푸르러진 빛 속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새로운 인생의 시를 쓴다.


 매일 아침 7시 40분, 텅 빈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출근을 한다. 그리고 오늘 저녁 7시 40분, 퇴근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초여름 곳곳에 사람들은 앉아있었다. 12시간 전 그 공원이 맞나 싶은 의문이 피어오를 만큼 활기차다. 오른손에는 하이트를 쥐고 왼손에는 담배를 핀다. 한 편 심각하고 한 편 장난스럽다. 공원의 플라타너스가 얼마나 푸르던지.



 이 모든 에너지는 당신이 아니라 초여름 때문일까.


 사람이 상황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는 인과관계는 가끔 절망적이다. 사고가 원치 않은 일을 했을 때, 우리는 저 명제를 빌려오기 때문이다. “그게 왜 그렇게 됐지? 잘 모르겠어.” 아, 모르겠다. 사실은 그게 맞겠지. 그러나 뭐가 됐든 이 계절엔 뭐든 결과론적으로만 보자. 연극센터 앞 20대 초반의 저 남녀도 포함이다. 저 둘은 일을 칠 것만 같다. 그래도 일단 모든 상황을 진심이 긍정하기로 하자.


 결코, 초여름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선선한 바람. 흔들리는 초록빛. 내려앉는 푸른빛. 초여름의 충. 뿌리쳐야만 하나.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나인 투 식스. 한국에 공식적으로 해가 뜬 시간. 우리는 조금 이성적이다. 늑대인간이 달을 보기 전처럼. 분침과 초침처럼 똑딱대는 공식들. 50분 공부, 10분 휴식.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 생각해보면 어스름한 이 밤은 법적으로 해가 뜬 시간도 아닌데 뭘 그리도 이성적이어야 하나. 착한 초여름이 일몰시간을 이리나 미뤄놨는데.



 초여름. 하이트 몇 캔과 전화 한 통만 있다면 지킬 공식은 없다.


 계절이 충동하는 대로 시를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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