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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ug 29. 2016

파리의 우연

파리를 다시 갔다. 짧은 소회.

26살, 8월. 에펠탑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물었다. “파리로 교환학생을 왔었다면서요? 이유가 뭐예요?” 답했다. “교환학생 갈 수 있는 유럽 나라 중에 수도가 파리밖에 없어서요.”


4년 전, 나는 파리에 교환학생을 왔었다. 도착한 다음날, 노트르담 성당엘 갔다. 사람들이 바닥의 별을 밟고 있었다. 다들 밟길래 나도 밟았다. 알고 보니 그 별을 밟으면 다시 파리에 오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진짜 다시 왔네…” 파리를 선택한 것부터 그 별을 밟은 것까지, 그 모든 건 우연이었을 뿐인데 4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석양이 지는 에펠탑, 4년 만이다

노트르담의 별과 파리, 그리고 나 사이에서 거부할 수 없는 인력이 있는 것일까? 사실 이번 파리 여행의 1등 공신은 노트르담의 별이 아니라 임시 자금을 변통해준 신용카드이다.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비행기 값이 89만 원이 아니었다면 나는 파리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파리를 교환학생지로 선택한 것부터 다시 여름휴가로 선택하기까지, 그 모든 것은 우연에 불과하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그냥 계속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질 뿐이다.


나처럼 건조한 삶의 관점을 가진 여행자에게 파리는 매우 적합한 도시다. 파리는 명백한 예술가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우연을 붙잡아서 아름다움으로 빚는 사람들이다. 모네, 로댕 그리고 고흐가 그렇다. 그리고 그들의 흔적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가 파리이다. 무심하게 벌어지는 삶의 크고 작은 우연적 사건들처럼 수많은 대작들이 파리의 미술관에 툭 걸려있다. 그렇게 무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감동을 받는다.

로댕의 키스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로댕의 키스). 빛을 받은 연못(모네의 수련연작). 별이 빛나는 밤(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감동 받은 작품 3 가지이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삶에서 우연히 오며 가며 만났던 순간들이다. 사귈 것 같지도 않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 키스했다. 친구와 우연히 전주에 갔다가 연꽃이 가득한 연못도 보았고. 할머니 댁, 텐트를 깔고 아버지와 별이 쏟아지는 밤에 누워있었다. 우연히도 말이다. 죄다 우연히. 우연은 제어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제어할 수 없음에 허무할 것이냐, 제어할 수 없기에 기대할 것이냐.


여행지로서의 파리가, 정확히는 파리를 살다 간 많은 예술가들이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주고 있다.

시간은 언제나 흐른다

22살. 나는 내가 한 26살쯤 되면 꽤 많은 것이 정해진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취직도 했고, 나는 전보다 좀 더 안정적이다. 특별한 사건도 크게 많이 벌어지진 않는다. 그러나 다행이라면 그때보다 지금이 더욱 성숙하다는 점이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삶의 본질이 우연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사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별 대단한 진리도 아닌데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름다운 나의 인생으로 해석하는 것. 어쩌다보니 돌아가게 된 파리에서, 어쩌다보니 만난 사람들에게서, 어쩌다보니 바라본 작품에서, 삶의 기쁨을 만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이 모든 생각들.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배우게 됐다.

행복했던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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