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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Oct 07. 2016

57살 아버지, 26살 딸

연휴 마지막 날 단잠을 자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연휴 마지막 날 단잠을 자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딸! 아빠야! 오빠 신혼집 봐주러 서울에 올라왔어. 좀 있다 딸 집에 도착할게!” 그러면 안 되는데 짜증이 먼저 났다. “아빠, 나 오늘 바쁜데…” 그리고 곧이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피곤하신데 너 보고 싶어서 올라가신 거야. 그러니 과일이라도 깎아라.” 나는 “응.”하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한 20분 뒤, 아버지는 새 호스를 사 들고 나의 방에 오셨다.


나는 최근 연식이 15년 정도 된 빌라로 이사를 갔다. 구조는 좋지만 연식이 연식인지라 여기저기 자질구레하게 손 볼 데가 많았는데,아버지는 새로 이사한 방에 오실 때면 항상 그것들을 고쳐주시곤 했다. “달그락, 달그락” 평소 인기척이 아무도 없던 방에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꽤 신경이 쓰였다. 세탁기에 온수가 나오도록 해주시고, 베란다문의 도르래를 고쳐주시고, 방문에 안전을 위해 걸쇠 하나를 더 달아주셨다.


사실 나는 그런 것들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고쳐주신것들은 내 삶에서의 중대한 결핍의 영역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것을 고쳐준다고 해도 내가 가진 삶의 만족감이 올라가지 않았단 뜻이다. 딸은 이미 26살이었고, 아버지는 임금피크제를 맞이한 57세였다. 장난감 몇 개에도 행복해했던 나는 이제 친구들과 BMW를 살거라 이야기하고, 좀더 나은 꿈의 직장을 선망하며, 똥차가 가면 온다는 말도 안 되는 속설의 ‘벤츠남’을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욕망에 꽤 많은 지분이 있는 게 SNS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올해부터 시작한 인스타그램에서 핸드폰'창'을 통해 어플을 바라보며 나와 똑같은 ‘일반인’이지만 매우 다른 ‘금수저’의 삶을 관음하고 욕망하게 됐다. 57세의 아버지는 더 이상 나에게 그런 비싼 장난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딸의 일상이 조금 더 편해지길 바라며 반나절을 철물점을 드나들며 방을 고쳤다.


날씨가 너무 좋았던 가을밤, 기분이 좋아 베란다 문을 열고 자고 싶었다. 근데 어머니가 하신 말이 떠올랐다. “건물 외벽에 가스 배관이 있으니 바깥쪽 창문을 열고 도둑이 올라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베란다 문을 항상 잠그고 자라.” 오늘 밤은 베란다 문을 열고 정말 날씨를 느끼면서 자고 싶은데, 무서웠다. 바깥 창문을 누군가 열고 들어오면 어쩌지? 가스 배관을 한 번 확인해보려고 베란다로 나갔다. 창의 손잡이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야무지게 꽁꽁 묶어놓은 노끈이 보였다. 절대 창문을 못 열고 들어오도록 정말 단단히 묶인 노끈이었다.


그때 알았다. 아버지의 사랑은, 가을밤 창문을 통해 불어 들어오는 하룻밤의 행복을 선물할 만큼 섬세하다는 것을. 몇 날 며칠 인스타그램의 창을 들여다보느라 우리 집 창도 쳐다보지 못했던 나의 무심함이 참 어리석고도 어리석었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모나기만 해서 지금의 큰 사랑에 감사할 줄을 모를까? 심지어 가만히 앉아서 받기만 하면 되는 아버지의 사랑을 말이다. 문득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가 시킨 대로 사과를 깎으러 갔다. 아버지는 전과 똑같이 세탁기를 조금 더 손 보시고는 오빠와 수지에 집을 보러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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