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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Dec 02. 2016

나의 보물

오히려 오빠가 나를 질투해야 한다.

오빠는 푸석거리는 얼굴로 나의 서울 자취방의 문을 두드렸다. 먹성이 좋아 항상 볼살이 올라있던 오빠의 얼굴이 홀쭉해져 있었다. 오빠는 졸업하고 울산의 한 중공업 기업의 사원이 되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오빠는 자주 메신저로 부모님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그런 오빠는 울산이 답답했는지 기찻삯으로 아버지에게 핀잔을 들을 만큼 서울에 자주 올라왔다. 원룸에 혼자 사는 나는 퍽 좁은 나의 방에 오빠가 주말에 들리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울산이 힘든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토요일 밤 오빠가 술에 취해 골아 떨어져 코를 골 때면 마음에 불만이 찼다. 오빠는 사실 총 두 곳의 기업에 합격을 했었다. 오빠가 선택하지 않은 곳은 서울에 있는 항공사였다. 돈 때문에 울산행을 택해 놓고 울산 생활이 답답하다며 매일 올라오는 오빠의 모습이 투정을 부리는 아이 같았다. 연거푸 주말에 올라오던 오빠에게 나는 눈치를 주었다. 오빠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모질게 말했다.


내가 오빠에게 모질게 말한 것은 단순히 불편함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취업 준비를 갓 시작하여 줄줄이 탈락하는 중이었다. 나는 오빠를 질투했다. 오빠의 불평이, 두 곳이나 합격한 그 능력에 대한 과시로 느껴지기도 했다. 오빠가 올라온 또 어느 주의 주말, 나는 오빠에게 말하지 않고 일요일에 새벽 같이 면접을 보러 나갔다. 깊게 잠들어 있던 오빠는 그런 나를 잠깐 돌아봤다. 나는 면접의 불안감과 대비되는 오빠의 평온하게 누운 모습이 거슬려 짜증이 났다. 


면접을 끝내고 돌아온 자취방에 오빠는 없었다. 대신 문 앞에 에이포용지에 쓰인 편지가 보였다. 편지의 다섯 번째 줄의 ‘난 취업을 했지만’이라는 어구는 북북 그어 지워져 있었다. 대신 ‘오빠도 같은 과정을 겪었고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고 있어. 그래서 그냥 힘내라고,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라는 글이 눈에 보였다. 오빠를 질투하는 나의 못난 마음을 거슬리지 않게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오빠는 나보다 단 4년을 먼저 태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4년의 차이는 평생의 평행선과도 같아서 오빠는 나보다 항상 모든 것들은 먼저 경험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먼저’, ‘솔선수범’, ‘우리 집에서 처음’, 이 모든 단어들이 얼마나 오빠를 외롭게 했을까 문득 마음이 아팠다. 오빠가 취업 때문에 어려워하던 시절, 방문을 꼭 닫고 소주를 마시던 오빠가 생각났다. 4년 늦게 따라오는 동생은 오빠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그릇이 아니었다.


나는 에이포용지에 투박하게 쓰인 그 편지를 나의 보물로 소중히 보관하며 좌절을 겪을 때면 언제나 꺼내서 읽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고 이야기 나누자!’, ‘오빠는 언제나 너의 편이고 우리 가족은 영원히 너와 함께 하는 동반자이니...’ 검정색 잉크로 또박또박 쓰인 그 글들이 나를 위로했다. 문득 타지 생활로 힘든 오빠에게도 이런 편지를 써주는 오빠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오빠가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복이 아니었다. 그 복이 오빠가 아닌 나에게 왔으니 더 이상 나에게 오빠를 질투할 자격은 없다.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오히려 오빠가 나를 질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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