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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Dec 22. 2016

니뭔날규

그리고 '나야 모르지'

‘니뭔날규’. “니가 뭔데 날 규정 지어?”의 줄임이다. 최근 대학 동기 단톡방의 가장 ‘핫’한 유행어다. 친한 친구들 사이가 으레 그렇듯 우리 동기방에서도 잦은 협잡과 원색적 비난, 근거 없는 조롱이 이어지는데, 그 것을 단박에 멈추게 하는 마법의 어구가 바로 ‘니뭔날규’이다. ‘니뭔날규’의 활용도는 정말 높다. 내 옷의 핏을 멋대로 규정짓지 말라는 의미의 ‘니뭔핏규’, 니가 뭔데 뭘 규정하냐는 의미의 ‘니뭔뭘규’ 등 여튼 ‘날’ 자리에 여러 단어를 끼워 넣기만 하면 말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니뭔날규’가 가진 공격력의 원천은 크게 ‘니뭔’과 ‘날규’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니뭔’ 즉 ‘니가 뭔데’라는 의문은 ‘너에겐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권위가 있니?’ 혹은 ‘그러는 너는 뭔데? 네 스스로부터 규정해봐’라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니뭔’이라는 워딩의 파괴력은 이 중의성에서 온다. 전자가 가진 약점을 후자가 잘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네가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먼저 스스로를 내 앞에서 규정짓기 전까진 날 규정짓지 말라는 셈이다. ‘날 먼저 규정지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니뭔’을 듣는 순간 큰 부담감을 느끼며 ‘규정’의 역지사지를 느낀다.


이때 ‘날규’는 상대가 ‘니뭔’으로 인해 받은 이 역지사지의 상처를 단도로 더 깊게 쑤신다. ‘아, 규정 당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날규’는 ‘방금 네가 한 말을 날 규정지은 행동으로 규정할게’라는 메시지로 ‘규정’의 폭력성을 역으로 후려친다. ‘니뭔날규’를 당한 사람 중 ‘널 규정지은 것이 아니다’라고 발끈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아마도 본인의 행동을 ‘규정’이라 ‘규정’한 불편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따지고보면 ‘규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규정’의 큰 장점 중 하나는 효율성이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성 봉사를 하는 봉사자들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이 사건을 개인이 파악하기 위해 접근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에너지 소진이 어마어마하다. 이상적 윤리와 실재한 현실 사이에서 깊은 갈등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권위자가 성 봉사는 ~~~해서 나빠 혹은 성 봉사는 ~~~해서 괜찮아라고 규정지어 놓고 개인이 그것에 설득된다면 비용은 줄어든다.


진정 나쁜 것은 ‘규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 태도다. 물론 ‘규정’의 장점이 효율성이기에 친절하게 설명하는 수고를 더한다면 시간이 더 걸려 꺼려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규정하는 자라면 ‘규정’의 탄생 비화를 궁금해 하는 사람을 설득할 만큼의 자신감, 논리, 근거 등은 있어야 한다. ‘규정’은 내용이나 성격, 의미 따위를 밝혀 정하는, 책임감을 요하는 것이다. 범죄를 ‘규정’해 기소하는 검사들에게도 기소장을 위해 수집하는 많은 자료들이 있다. 사건을 규정하는 언론들도, 인간을 규정하는 문학가들도 ‘규정’을 위한 다양한 취재를 한다. 근데 참 특이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근거 없이, 논리 없이, 자신감 없이 상대방을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부분 ‘~~~해서’를 생략한 채 ‘넌 별로야’라고 말한다.


아니, 제가 상대방의 스토커도 아닌데 상대방에 대해 말하려고 근거를 구비하고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고요?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감히 ‘규정’ 지어본다. 상대방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면 높은 확률로 규정지을 자격도 없다고 보면 된다. 그냥 규정짓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니뭔날규’가 대학 동기 단톡방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당시 고등학교 친구들 단톡방에서도 새로운 유행어가 생겼다. 바로 ‘나야 모르지’였다. ‘나야 모르지’는 ‘니뭔날규’에 버금가는 대화의 만능열쇠 구실을 하고 있다. ‘사랑이 뭘까?’ ‘나야 모르지’ ‘퇴사해서 뭐 할건데?’ ‘나~야~모~르~지~’ 뭐 이런 식이다. 빅뱅 새 신곡 ‘에라 모르겠다’가 발매하기 전 유행했던 거라 창시자는 큰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사실 그냥 잘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니뭔날규’와  ‘나야 모르지’. 입에 착착 달라 붙는 것이 될성부른 떡잎인 듯 하다. ‘규정의 끝판왕’인 모 대통령의 유행어 ‘그냥 참 나쁜 사람’을 파괴하는 전국구 유행어가 되기를, 조심스레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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