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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Jan 05. 2017

어떤 프렌치 프라이

근데 이건 프랑스식 감자튀김이 아니야

프랑스 체류증을 받기 위해 파리 바스티유 광장으로 갔다. 일찍 도착해 이민통합사무소 주변 Quick이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밥으로 햄버거 세트 메뉴를 사먹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남아 광장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우연히 한 공중전화박스 주변에 서있는 아랍계 성인 여성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프렌치 프라이 한 팩을 손에 쥐고 있었다. Quick의 것이었다. 공중전화박스 안에는 2명의 아랍계 어린 아이가 있었다.

     

어린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그 여성은 프렌치 프라이 한 팩을 두 아이들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자신도 먹었다. 아마 그들 세 명의 점심밥인 듯 했다. 공중전화 안은 낡고 더러운 담요, 폴리 재질의 백팩, 그리고 아이들의 길고 헤진 옷가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받아먹기만 했고 여성의 손길은 푸석하고 무력해보였다. 그들의 점심 식사는 이내 끝나 버렸다. 엄마는 쓰레기통에 빈 팩을 버렸다. 아이들은 다시 공중전화에서 잠을 청했다. Quick의 프렌치 프라이는 단품으로 2유로, 약 3000원 정도이다. 이 세 명의 인당 끼니 값은 1유로가 안 되는 셈이었다.

      

공중전화박스는 부채꼴 모양으로 생겨, 총 세 개의 공중전화가 원형으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였다. 나머지 공중전화박스로도 시선을 옮겼다. 그 곳들도 공중전화의 구실을 못 한지 오래되어 보였다. 이민자로 보이는 부랑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적은 양의 점심밥조차 먹지 못한 듯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휴대폰 단말기를 가진 2012년, 사람들은 공중전화를 찾을 일도, 바라볼 일도 없었기에 그들은 철저히 사회의 밖이었다.     


5년 전 파리 교환학생을 갔을 때 기억이다. 똘레랑스, 관대함의 나라인 줄 알았던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의 노동력을 수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입된 수많은 이민자들은 열심히 일하기 이전 편견부터 이겨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Quick에서 프랑스인과 함께 햄버거를 사먹다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한국에선 이거 프렌치 프라이라고 하는데?” “그래? 근데 이건 프랑스식 감자튀김이 아니야. 베꼈거나 잘못 이름 지은거지.” 스스로 ‘프렌치’라고 소개하지만 ‘진짜 프렌치’들에게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프렌치 프라이의 신세였다.     


나는 공중전화의 그 가족에게 딱함을 느끼며 시간에 맞춰 이민통합사무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도착한 이민통합사무소의 문 앞에선 대여섯 명의 이민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불만을 토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섰다. 대기하고 있는데 한 흑인 관리자가 나를 불렀다. 탈의실에서 윗옷을 다 벗으라고 했다. 가운도 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를 방으로 불렀다. X-Ray를 찍었다. 관리자들의 알 수 없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체류증 신청을 끝내고 나는 수치스러운 기분으로 다시 바스티유 광장으로 나섰다. 프랑스가, 파리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2016년, 파리 테러를 보며 문득 그 공중전화박스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먹던 가족이 생각났다. ‘프렌치’가 되지 못한 그들의 심리적 결핍과 불만은 1평 남짓 조그마한 공중전화박스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그들이 원했던 건 어쩌면 햄버거 한 세트를 한 명이 오롯이 먹을 수 있는, 그정도의 평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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