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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21. 2017

열정의 배추

대만의 No.1 보물

대만에는 매우 유명한 박물관이 있다. 국립고궁박물원. 세계 5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곳에는, 장개석이 대만으로 올 때 가져온 대륙의 진귀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3월 초 부모님을 모시고 대만여행을 다녀오며 이 박물관에 들렀다. 온갖 화려한 도자기, 조각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보물들 중, 꽤 오래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는 단 하나의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옥배추였다.     


옥으로 만들어진 배추. 정식 명칭은 ‘취옥백채’다. 솔직히 속으로 약간 황당하기도 했다. 인자한 미소의 부처님이라던가, 혹은 균형미가 뛰어나다는 금관이라던가, 보통 그런 것들이 어둠이 깔린 전시실에 고고히 아우라를 뿜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장날 커다란 갈색 세숫대야에서 소금을 팍팍 뿌려 숨을 죽이던 그 배추가 뻔뻔하게도 나를 기다리게 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나는 궁금해졌다.     


약 20분의 대기시간을 지나자, 나는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취옥백채를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대만 여행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취옥백채를 본 순간이다. 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게 조각된 배추 줄기와 이파리의 모양새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약 20센치 가량의 작은 크기였는데, 김장날 쌓아놓은 배추 중 하나를 막 꺼내 축소시켜놓은 듯 했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해 친구들에게 취옥백채에 대해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 발을 안 받는다.


친구들은 옥배추에 감명 받은 나를 보고 웃기다는 반응이었다. 솔직히 나도 내가 웃겼다. 예쁘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넘치는 국립고궁박물원을 다녀와서, 더 크게는 재미있는 것으로 넘치는 나라 대만을 다녀와서 배추 타령만 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취옥백채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수많은 취옥백채 기념품들이 팔리는 것을 보면 나만의 ‘배추병’은 아닌 듯 했다. 그 배추는 왜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길까.  


취옥백채는 1등급의 옥에 조각된 작품이 아니다. 원래 옥은 백색이거나, 청색이거나, 즉 하나의 색깔로만 이뤄졌을 때 좋은 상등품으로 친다. 그런데 취옥백채를 조각한 옥은 흰색, 노란색, 초록색이 고루 섞여 그보다는 훨씬 낮은 등급의 옥이었다. 보통 조각가라면 이런 옥을 받았을 때 오히려 안심하기도 한다. 어차피 질 낮은 재료라면 최상의 무언가를 조각해야하는 부담이 줄어드니까 말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누군가는(취옥백채의 작가는 미상이다) 빛깔이 섞였다는 옥의 이 단점을 오히려 살려 조각했다. 사실은 그냥 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다. 누군가 서태후의 병풍에 들어갈 최상급 비취옥을 조각하고 있을 때, 낮은 질의 옥에 배추를 열정적으로 새긴 것이다. 물론 아름다운 비경을 담은 비취옥 병풍도 충분히 압도적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보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린 것은 취옥백채였다. 배추와 똑 닮은 조각품을 들겠다는 열정이 이긴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돼 있어.” 라라랜드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취옥백채를 보면서 이 대사를 떠올렸다. ‘열정페이’, ‘노오오오력’. 열정이라는 단어가 그 언제보다 퇴색된 오늘날. 열심히 사는 만큼 대가를 지불해주지 않는 세상 때문에 열정이 바보가 된 세상. 이 속에서도 진짜배기로 꿈꾸면서 도전하는 마음은 여전히 또 심장을 뛰게 한다. 라라랜드의 흥행이 그랬고, 취옥백채를 보기 위해 길게 늘어진 줄이 그렇다.    


이 웃긴 세상에서 상등품이 아닌 보통의 옥으로 태어난 내가, 또 그리 멋진 꿈도 아닌 딱 배추 같은 꿈을 꾸는 것 같은 내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열정페이’와 ‘노오오오력’의 세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하는 고민에 대해서 취옥백채는 이렇게 말한다. 설사 작자미상으로 남을 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또 운이 좋으면 사람들이 줄 서서 당신의 작품을 찾으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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