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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Nov 05. 2017

표현

자존심을 버리면 보이는 것들

금요일, 친구 2명을 만났다. 우리 셋은 수다를 한참 떨었다. 그런데 10시쯤 되자 A가 “10시다. 이제 가자.”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 가자.”라고 말했다. 사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다른 친구인 B는 너무나 쉽게 이렇게 내뱉었다. “좀 더 있자 가자!” 그렇게 수다는 1시간 더 진행됐다. 내심 조금 더 이야기 하고 싶었던 나는 B가 고마웠다. 그렇게 꽉 찬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향했다.


문득 B를 보니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이 생각났다. 토니안을 광적으로 좋아하다 결국 집 앞까지 찾아가는, 성시원 말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대방에 대해 본인이 가진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성격이 좀 닮아보였다. B는 오늘도 “난 너네랑 있는 시간이 너무 좋으니 더 놀자!”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관계에 있어서 조금 상대방을 귀찮게 하는 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이상하게도, 이런 표현이 나에겐 참 어렵다. 처음엔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그런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이 관계가 나에게 더 절실하다는 표시를 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방이 먼저 일어나자고 말하기 전에 ‘피곤할테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자고 하고,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더 놀자!’라는 이야기보단 ‘잘 들어가라’곤 했다. 어차피 아쉬움은 한순간이니까.


감정 표현과 자존심은 제로섬 게임과도 같다. 관계에서 표출되는 사람 감정의 대부분은 외로움에서 나온다. 사랑 혹은 우정이란 포장으로 본인이 가진 외로움에 대해 상대방에 말하는 건 조금 창피하다. 나약해보이고, 불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감정을 내보이는 만큼 결국 자존심과 면은 점점 깎이기 마련이다. 윤종신의 ‘좋니’가 ‘찌질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새 조금씩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대면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표현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됐다. 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지자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그러니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조금 안정됐다. 


어쩌면 누군가를 향해, 또 무언가를 향해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표현은 결국, 내가 지금 느끼는 나의 감정에 대해 스스로 존중해주는 것이다. 이런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우리는 ‘자존감’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표현과 자존심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답이 조금씩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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