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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26. 2018

연어

어제 연어를 먹었다. 내가 먹은 연어는 다른 연어와 좀 달랐다. 그는 내가 이빨로 우그적우그적 씹었음에도 위에서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의식이 여전히 살아있는 강한 생선이었다. 위액이 나올 때 그는 나에게 외쳤다. “위액이라니? 날 너무 잔인하게 고문하는 군?” “와하하~ 넌 내가 먹었어! 먹었으면 먹힌 대로 순응하고 살라고~” 나는 배를 통통 두들기며 포식자의 허연 이를 드러냈다. 쇼파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가 내지르는 고통에 가득찬 소리가 위 밖으로 들렸다. “꾸르륵, 연꾸르륵...”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햇살이 내려왔다. “아 맞다! 오늘 소개팅날이지?” 연어는 잠잠했다. “이녀석, 드디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맛있는 것을 사먹어야지. 소개팅녀가 예뻤으면 좋겠다. 와, 하! 하! 그런데 저멀리 장에서 연어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뭐지? 나는 의아해서 내장에 귀를 기울였다. “포식자여, 우리 연어 일당은 해방을 위해 철저히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를 다시 강으로 보내주시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패거리의 민중가요는 계속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합정에서 만난 소개팅녀는 놀랍게도 셀카와 완전히 일치한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예쁘다! 나는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기 위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꾸르르르르르르르륵” 방구를 뀐 것도 아닌데 너무나 크게 울려서 순간 민망해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 창피해. 순간 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집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꾸르르르륵. 꾸르륵. 꾸르륵.” 계속 꾸르륵대자 소개팅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저는 책 읽는 거 좋아하거든요~ 혹시” “와하하하하하! 저도 책 읽는 거 좋아합니다. (꾸르르르르륵)” “어떤 일 하세” “와하하하! 일! 일 좋죠! (꾸르르르륵)” 나는 소리를 가리기 위해 꾸르륵 댈 때마다 큰 소리로 헛소리를 했다. 결국 대화에 실패.


커피를 먹는 자리로 겨우 옮겨왔다. 드디어 조용해지나 했더니,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자 연어들이 기다렸다는 듯 실력투쟁을 시작했다. “강으로 갈 수만 있다면! 내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울 것입니다!” “이 멍청이들아! 너넨 연어가 아니라 설사라고!” “네?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소개팅녀는 당황한 듯 나를 바라봤다. 아, 이건 분명 레드라이트다. “이만 일어날까요?” “아, 잠시만요.” “강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두 가지 목소리가 압박해왔다. 일어나는 소개팅녀를 잡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복부에서 엄청난 데미지가 느껴졌다. 이 녀석들, 진정한 무력 투쟁을 시작했다.


화장실. 화장실 없나. 근데 소개팅녀도 잡아야하는데, “은지씨! 잠시만요!” 카페를 나서는 소개팅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랫배를 부여잡고 뒤따랐다. 식은 땀이 온 몸을 뒤덮었다. “제가! 사정을 다 설명하겠습니다. 은지씨!” “한강이 다가온다! 패거리들이여, 더욱 강하게 반발하라!” “윽, 아파! 은지씨! 닥쳐! 이 미친놈아!” “네? 미친놈이요? 너무하신거 아니에요?” “아, 잠시만요. 그게 아니라.” “한강 비린내가 난다!” “너무한건 니들이지!” “네?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소개팅녀는 더 빠른 속도로 자리를 뜨고 있었다. 나는 냉정한 그녀의 뒷모습을 허무하게 외쳤다. “그래! 가라, 가! 에휴.” 순간 그녀가 아닌 장에서 패거리들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포식자가 해방을 선언했다! 탈출 준비를 해라!”


갑자기 탈출 직전의 복부통증이 느껴졌다. “우욱!” 여긴 화장실이 없는 고립무원의 장소! 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연어와 나는 그렇게 이별 직전의 연인이 되어 서로를 고통스럽게 옥죄고 있었다. “이별하자!” “강으로 보내주시오!” “노력중이야!” “어서!” 나는 버스에 급하게 올라탔다. 그런 저 멀리 연어의 방출을 돕는 구조물이 보인다. “이런, 망할!” 과속방지턱 하나! “욱!” 과속방지턱 둘! “악!” 과속방지턱 셋! “으윽!” 내 표정은 연어색으로 변해간다.


하, 결국 환경파괴를 했구나. 연어를 내려놓은 곳은 양화대교 아래 한강이었다. 방생하니 시원하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나는 문득 인간의 포식 행위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돌이켜본다. 언제나 감사해야지. 교훈의 대가는 양말 한 짝의 희생이었다. 미안해, 양말아. 휴지가 없어서.


written by 최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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