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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31. 2018

내적 갈등

2017년 5윌 5일, 그러니까 어제 저녁, 주인님께서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를 당하셨습니다. 뒤룩뒤룩 살이 찐 것이 그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관련된 책임자를 색출하고 그 죄를 명명백백히 밝히는 것이 오늘 이 청문회의 목적입니다.


'신체 수뇌부'의 장이자 청문회 위원장인 <전두엽>의 발언으로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이목구비당의 <입>, 내장기관 책임자 <위>와 <창자>, 이외에 이들의 수족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과 <발>이 주요 증인으로 참석했다.


전두엽: 먼저 <입> 증인.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텐데요. 당신이 들여보낸 음식들이 주인의 살이 되었습니다. 주인님이 오늘날 "돼지"소리를 듣게 된 데에 1등 공신 아니신가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치킨과 맥주를 머금고 있었다는 제보도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입: 위원장님.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하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주인님이 진작 이별통보를 당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뚜렷한 이목구비당 덕분이었지 않습니까. 이 촉촉한 입술을 보세요. 저는 제 소임을 다했습니다. 이 예쁜 입에 음식을 구겨 넣을 수밖에 없었던 건 다 내장기관의 탐욕 때문입니다.


귀: 맞습니다. 얼마 전에도 분명 길을 가다가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 저도 봤습니다.


방청석의 이목구비 당원들이 말을 보탰다. 그들은 실제로 뚜렷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목구비당은 주인이 그나마 '잘생긴 돼지'로 남을 수 있던 것은 그들 덕분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화살은 내장기관의 책임자 <위>에게로 돌아갔다.


위: 위원장님. 방청석에 이목구비 당원들 정숙시켜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겉만 번지르르해서는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지나칩니다. 저들은 툭하면 '위에서 시킨 일'이라며 모르쇠 전략을 피는데, 저는 그저 음식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게다가 음식들이 많이 지나갈수록 더는 일을 더해야 하는데 제가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근 몇 년간 하루를 멀다 하고 야근을 했습니다. 제 퀭한 피부색 좀 보십시오.


창자: 저야말로 이 자리에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오는 대로 받을 뿐 아무것도 제의도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주인의 수족으로 운동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음식들을 갖다 넣은 <손> <발>이 오히려 모든 일을 관장하는 배후라고 생각합니다.


<손>, <발>: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저흰 말 그대로 수족일 뿐입니다. 저희는 수뇌부가 보낸 명령에 따라 행동합니다. 저희를 처벌하시려거든 지금 상석에 앉아계신 수뇌부 어르신들 전부 무사 치는 못할 겁니다.


물고 물리는 네거티브 속에, 화살은 오히려 위원장 전두엽을 위시한 수뇌부로 돌아갔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입>: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혜주야.. 혜주야!!

입이 노래를 읊조리더니 누군가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전두엽>: 이게 무슨 소리죠? 혜주라면.. 주인님을 걷어찬 여자 친구 아닙니까? 그녀가 혹시 다시 돌아왔나요? 방청석의 <눈>, 상황 파악 부탁드립니다.


<눈>: 아뇨..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아무래도 주인님 정신이 다시 드신 모양입니다. 음.. 근데 이거 왜 이러지..

그 순간, 증인석의 <위>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공중제비를 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청문회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가운데, <간>이 급히 위원장에게 달려가 귓속말을 전했다.


<전두엽>: 오늘 주인님이 정신이 드신 관계로, 다들 제 위치에 신속히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지금 비상사태이니 신속히..

-

"혜주야...우...우웨에엑..."

남자가 벌써 세 번째로 토사물을 쏟아낸다.

"야 정신 좀 들었냐... 소주 병나발 불 때부터 알아봤다. 좀 일어나 봐 이제."

남자의 친구로 보이는 자가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혜주야.... 우는 손님이 나뿐인가~~ 요~ 흐.. 흑흑"

그렇게 입을 필두로 남자의 신체기관이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written by 공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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