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은말고이응 Mar 31. 2018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넌 평생 탄광에서 썩을 팔자야! 전생에 전쟁에 나가서 숫총각들을 너무 많이 죽였어!" 점쟁이는 남자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주에 걸렸다, 이거지." 점쟁이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쌀알을 뿌렸다. "자, 너에게 방법을 알려준다. 보자... 저주를 풀 방법이.." 남자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거군, 이거야! 넌 기역부터 히읗까지의 연애 사전을 완성해야 숫총각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리긴,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그리고 히읗까지, 모든 자음의 성씨를 다 만나야 해. 하나의 자음도 빼놓아선 안돼. 그리고 다 키스해야 해."


"안녕하세요. '도'가영입니다." 남자는 28년의 연애 인생 동안 끝없이 여자와 만나고 키스하고 헤어졌다. 그 결과, ㄷ, ㄹ, ㅍ, ㅌ만 빼놓고 다 만났다. 드디어 '도'씨다. 찾아 헤매던 ㄷ. 이 여자만 만나면 디귿도 삭제다. "가영 씨, 제가 진짜 좋아하는 스타일이시네요. 하하." 나름 반반하게 생긴 남자는 여자를 꼬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어머? 진짜요?" 그렇게 연애한 지 2개월. 그들은 키스를 했다. 남자는 매달리던 도가영을 뿌리치고 이제 ㄹ(리을)을 찾기로 했다.


"우리나란 두음법칙 때문에 리을을 찾기 어렵잖아.. 라미란 말고 누가 있어." 남자는 머리를 싸맸다. "어쩌지?" 그때 핸드폰에 한 신문기사가 보였다. "북한 응원단 입국..." 남자는 무릎을 탁 쳤다. "리설주.. 리! 분명 북한 응원단에 '리'씨가 널렸을 거야!" 평창행 티켓을 끊었다. "숙소에 급습하자!"


"북한 응원단 숙소에 잠입한 남자가 북한 측 진행요원에 덜미를 잡히면서 큰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북측은 북한의 법으로 다스리겠다면서 엄포를 놓은 상태인데요. 실제로 '리'모 여성 응원단과 성행위를 나눈 것으로 파악되어 상당히 큰 문제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남자는 눈이 가려진 채 북으로 호송되었다. "날래 눈 뜨라우!" 눈 뜨니 퀴퀴한 탄광이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삽질 중이었다. "네 심판 때까지 삽질이나 하라우!" 남자는 머리를 싸맸다. "탄광에서 썩을 팔자라더니... 크흑.."


"야 대박이다. 아오지 탄광을 다녀오다니, 그래도 멀쩡히 돌아온 게 어디냐. 뭐야, 어떻게 돌아온 거야." 친구들은 돌아온 남자를 보며 신기한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냥 외교적으로 대통령님이 잘 풀어주신 거지. 하마터면 진짜 탄광에서 썩을 뻔했어. 연애 사전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남자는 의식하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친구가 되물었다. "뭐? 연애 사전?" 남자는 깜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아냐!"


"Hi! My name is 'ㅌ'ony." "Hi, My name is 'ㅍ'eter". 그 탄광엔 토니와 피터가 있었다. 둘은 함께 북한에 놀러 온 게이 커플이었다. 선전물을 빼돌리려 하다가 잡혔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본인이 게이였던 숫총각 전사자들의 넋도 위로해야 함을 알았다. 남자는 그 커플 사이에 끼는 것,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별 수 없었다. 그 탄광에서 2번의 키스로, 남자는 연애 사전을 완성했다.


written by  최형경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내적 갈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