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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pr 03. 2018

대신 기억해드립니다

<기억 보존 시스템>은 그 이름과 달리 사실은 망각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다. 아무리 부정적인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기억을 삭제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일종의 찜찜함, 부채감을 남겼다. 같은 삭제지만, 삭제된 기억을 외부 저장장치에 '이관'해 놓는다는 점을 강조한 <기억 보존 시스템>의 마케팅 전략은 그런 거부감을 단숨에 지워냈다.


 <기억 보존 시스템>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단연 '김낙천 씨'의 사례라고 할수 있다. 그는 이 시스템으로 목숨을 구한 사람 중 하나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는 어느날 귀가 후 처참한 꼴로 살해당한 부인과 어린 딸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며칠간 일도 나가지 못했고 식음을 전폐했다. 그를 걱정한 친구가 <기억 보존 시스템>을 소개해줬고, 김 씨는 비로소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사건 이후 며칠 내내 그의 머리속에서 재생된 딸과 아내의 끔찍한 이미지는 아마 그를 죽음까지 몰고 갔을 터 였다.


"알아요, 내 가족들이 처참한 일을 당했고,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을 거란걸."

 인터뷰차 찾아온 <기억 보존 시스템>사 개발자들에게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핏빛 풍경, 내가 느꼈던 충격과 공포.. 그건 그냥 시스템에 이관하는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니까 그건."

 가족을 잃은 슬픔에 목이 잠겨 힘들어 하지만, 담담히 극복해나가는 그의 사례는 <기억 보존 시스템>의 상징적 표본이 됐다. 그 인터뷰의 일부는 광고로 방영되기도 했다. 광고의 끝에는 '대신 기억해드립니다.'라는 카피가 담담한 음성으로 흘러나왔다.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이관'하기 시작했고, 이제 현대인에게 이 시스템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크고 작은 불편한 기억들이 이관되었고, 늘어난 데이터 수요로 인해 <기억 보존 시스템>사가 커다란 사막을 통채로 매입했다는 소식이 나기도 했다.


 김낙천씨에 대한 충격적인 뉴스가 나온것도 그쯤이었다. 경찰 재수사로 그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진범이라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체포되는 김씨는 아내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는 살해 기억을 모두 '이관'했기 때문에, 아직도 스스로를 범죄의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것 같았다.


 뉴스가 나가자 사람들은 김씨를 격렬히 욕했다. 그러나 분노가 가시자 불편함이 밀려왔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 보존 시스템>의 이용자였기 때문에. 상처받은 기억을 이관한 사람들도, 상처준 기억을 이관한 사람들도, 김낙천씨의 뉴스가 주는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뉴스보도 이후 김낙천씨에 대한 기억이관이 급증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더 이상 김낙천이라는 이름은 남아있지 않게 됐다. 황량한 어느 사막에서 24시간 빛나고 있는 커다란 서버들만이 그를 '대신' 기억하고 있다.


written by 공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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