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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r 25. 2018

불멸(不滅)

A

 꽤나 이른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부유했던 형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빠르게 나의 생명을 잠식해왔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 운명보다도 미웠던 것은 형이었다. 나를 고치지 못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비슷했고, 하고 싶은 일도 같았다. 그런데 순간순간의 미묘한 차이에 의해 우리 삶의 차이는 점점 벌어져 갔고, 어느새 형은 결코 내가 닿을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 가 있었다. 

 형이 눈물을 흘리며 환자복 차림의 내 앞에서 미안하다고 울고 있을 때, 나는 한없이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죽도록 따라잡고 싶었던 그가 나를 연민하고 동정하는 것이 싫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죽어서 영원히 그에게 불쌍한 존재로 남는 것이 싫었다. 대부분의 열등감은 삶의 과정 속에서 희미 해진다. 그러나 내 것은 오히려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더욱 치달았고 그렇게 나는 죽었다.


B

 “경쟁, 시기, 질투… 그것은 인류와 함께 생겨난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와 경쟁을 해야했죠. 전쟁과 증오, 종교적 갈등, 열등감, 굶주림. 이 모든 것들의 근본엔 한정적 자원이 있었습니다.”

 연사가 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뒤에 걸려있는 큰 스크린에서는 각종 명화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는데, 주로 전쟁이나 기근 등 어두운 사건을 다룬 그림들이었다.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루이 다비드의 <테르모필라이의 레오니다스>부터 시작해 파블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도 보인다.


A

 죽음 이후의 세계는 항상 궁금했다. 완전한 무(無)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으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감히 상상할수도 없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때, 잠시동안 이것이 무의 세계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렴풋이 심장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뒤 나는 어느 산모의 태아로서 내가 다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B

 “아시다시피 현재는 오랜 인간의 숙적이었던 ‘한정된 자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거나,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부족한 일은 이제는 지구상에서는 사라진 개념이 되었죠. 그리고 최근에는, 저희 생명공학팀의 오랜 연구 끝에 유한한 것으로 알았던 인간의 생명 역시 영원히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크린에 이제 우울한 명화들은 자취를 감추고, 오직 하나의 단어만이 떠있다. ‘ETERNITY’. 영원. 모두 대문자로 쓰여 있는 그 글자들은 옅은 은색 빛을 내고 있다.


A

 그렇게 지루하고 긴 시간이 고요히 흘렀고, 나는 나와 같은 처지의 ‘존재’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우리는 쌍둥이었던 것이다. 내 옆에서 아주 작은 심장고동 소리를 내며 웅크리고 있는 나의 형제를 보며 이게 지금 나의 모습이구나, 하는 상념이 잠깐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든 생각은 이번에는 내가 장남으로 태어나겠노라는 경쟁심이었다. 아주 작은 차이들이 결코 좁힐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장’남과 ‘차’남. 둘 앞에 붙는 수식의 무게는 내게는 남다른 것이었다.


“ ‘영원한 삶’. 영생. 이것이 주는 의미를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나긴 토론과 회의,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영원한 삶은 축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류는 그 선물을 받는 것에 협의를 했고 1년전, 슬프지만 더 이상의 새로운 인류의 출현을 제한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죽음 없이 탄생만 있게 된다면 지구에 물리적인 공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조금 뒤, 우리 ‘영원의 세대(Generation Eternal)' 마지막 아이가 태어납니다. 출산이 제한되지 않은 마지막 산모가 지금 분만실에 있습니다. 오늘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축제에 모여주신 여러분. 이 아이의 탄생, 그리고 우리 인류의 새로운 도약을 축하합시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연단 뒤의 큰 스크린에는 수많은 의료진들, 그리고 일부 취재진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 가운데에, 산모 하나가 진통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A

 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옆의 저 형제도 나와 같이 전생에 대한 의식이 있을까? 먼저 나가고 싶어할까? 가늠할 수가 없다. 어둠속에 점차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장남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그 미세한 차이들. 관심의 차이, 대우의 차이, 시선이 차이를 되새긴다.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빛을 향해 나간다. 내가 먼저. 아주 미세하지만 내가 먼저. 

 눈이 부시다. 마지막 아이.. 마지막 아이. 그런 소리들이 두런두런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나를 향한 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짓거나 경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장남인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을 보며. 힘껏 우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written by 공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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