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를 그리워하고 싶다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by shining days

계속되는 남편의 야근으로 몸이 지칠때,

아이들을 돌보기가 힘에 부칠 때,

엄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부럽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신 것처럼,

엄마를 떠올리기만 해도 금세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엄마를 떠올리기만 해도 모든 피로가 눈 녹듯 녹았으면 좋겠다.


돌 쯤부터 엄마는 내 곁에 .

그래서 한번도 엄마를 불러본 적이 없다.


엄마 뿐 아니라 가족들과의 뭉클한 추억 없다.

내 어린 시절은 사막같이 황량하다...


브런치를 포함한 세상의 수 많은 글들엔 엄마가 있데, 나에겐 엄마가 없다.

힘들 땐, 나도 남들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


"딸~ 무슨일 있어?"

엄마가 걱정스러운듯 물으면


"아니야. 아무 일 없어.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라고 말하고 싶다.




둘째를 낳고 8개월이 지났을 즈음, 처음으로 남편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나도 남들처럼 엄마가 갖고 싶어...!!"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는 엄마 얼굴도, 연락처도 몰라요."

덤덤하게 얘기했다.

그 때 이후로, 내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건 6년 만에 처음이었다.


오죽 힘들면 그랬을까..

육아 우울증에, 갈수록 망가지는 건강에, 남편과의 다툼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참아왔던 설움이 복받쳤다.

남편과 싸우면, 남들은 한번쯤 짐 싸들고 친정에 가기도 하던데...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그리웠다.

엄마라면 그래줄 것 같았다.

이래서 힘들다, 저래서 힘들다... 힘들단 말 가득찬 이야기도 지겨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혜원이, 많이 힘들었겠네. 아유, 그래서 엄청 속상했겠네."

그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도 그런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다가도

가끔 한계를 넘어가는 순간을 만다.


그럴 때면, 가슴 속의 어린 아이가 구슬피 운다.

"나도 좀 사랑해주세요. 나도 사랑받고 싶어요. 나도.. 맘껏 사랑하고 싶어요."


그래.. 네가 아직도 거기에 있었구나. 거기서 숨은 듯이 지냈구나.

너라고 왜 떼쓰고, 어리광부리고 싶지 않았을까.

너라고 왜 힘들다며 엄마에게 징징대고 싶지 않았을까.

자꾸만 참으라고 해서 미안해.

계속 견디라고만 해서 정말 미안해.



결혼을 2달 앞두고 신혼부부 건강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초음파를 보는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른쪽 난소에 7cm짜리 물혹이 있다며,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소견서를 손에 쥐어주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일단 결혼식을 치르고 좀 더 지켜보자고 했. 사이 물혹은 쑥쑥 잘도 자서 6개월 만에 13cm가 되었다.


이 정도 크기면 물혹이 갑자기 터질수도 있어서 서둘러 수술을 받았다. 직일때마다 수술부위가 아다. 밥을 먹 때나 화장실에 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남편이 없었다면.. 보호자 없이 혼자 수술을 받고, 혼자 밥을 먹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대화할 이도 없이 홀로 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옆에 환자는 엄마가 맛있는 귤을 까주는데, 나는 귤 까줄 사람이 없다고..

아픈 것도 서러운데, 혼자라서 더 서럽다고..

남몰래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나에게도 귤을 까줄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 때, 내 곁에 남편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퇴원 후, 병가를 내고 며칠 더 쉬었다. 남편은 출근을 했다. 제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불을 키기 위해, 밥을 먹기 위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물을 마시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직 아물지 않은 몸을 일으켜야 했다. 럴 때마다 수술 부위가 욱신욱신 아팠다.


남들은 이럴 때 친정엄마가 간호도 해주고 맛있는 밥도 차려주겠지.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도 정성껏 끓여주겠지.


"자, 다 됐다. 밥 먹자."하면서 나를 일으켜주면 "맛있게 잘먹겠습니다" 하면서 씩씩하게 잘 먹을텐데..

혼자 먹는 밥은 참 맛이 없었다.

병원에 입원했다 나온 터라 냉장고도 텅 비어 있었다.


'얼른 남편이 왔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시계만 쳐다보며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전등 스위치가 있는 곳까지 가기가 힘들어서 주방 불을 켜지도 않았다.

혼자 어두운 식탁에 앉아 눈물 젖은 짜디짠 밥을 먹었다.


입맛이 없어도.. 약을 먹으려면 밥을 꼭 먹어야해.

어린 아이 달래듯 나를 달래가며, 세끼를 꼬박 꼬박 차려 먹었다.

다음 끼니를 위해 뒷 정리까지 마무리했다.

첫 애를 낳고 집에 돌아왔 때도.. 냄비 한가득 소고기 미역국을이면서 상상했다.

"혜원아, 밥 먹어라. 미역국은 아직 뜨거우니까 식혀서 먹고."

"애 낳느라 힘들었지? 이렇게 작은 몸으로 어떻게 애를 낳았니."

"애는 내가 볼테니, 밥이라도 마음 편히 먹어. 천천히 꼭꼭 씹어서."

"어제 밤에도 잘 못잤지? 잠깐 눈 좀 붙여."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날이 따뜻하니 근처 산책 좀 하고 와. 꽃이 아주 예쁘게 폈더라."


에게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라도, 아빠가 없으면 형제나 자매라도... 나에게도 그리워할 친정이 있으면 좋겠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아니면 그리워라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참 부럽다.




아무리 힘들어도 날 위해 달려와줄 가족이 없으니, 나는 오늘도 묵묵히 내 몫을 해내야한다.

기분이 좋거나, 무기력하거나, 할 만하거나, 힘에 부치거나..

어떤 감정이든, 어떤 상태이든, 엄마로서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오늘처럼 눈을 뜨자마자 코가 맹맹할때, 아침부터 여기저기가 쑤셔올 때, 내가 갖지 못한 엄마를 떠올려본다.


아무리 아쉬워한들 나의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니,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자기 편이 아무도 없다 느껴질 때,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듯 외롭다 느껴질 때, 그럴 때마다 나를 떠올려주면 좋겠다.


훗날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고,

엄마를 그리워해줬으면 좋겠다.


찬 바람이 부는 쌀쌀한 겨울이 되니, 집이란 단어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내가 우리 아이들의 아늑한 집이 되어줘야지.


그래, 우리 아이들이 힘든 날에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런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거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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