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를 타도 브레이크를 밟는데 다리 길이가 부족할 수가 있다는 걸.. 남들은 상상이나 할까?
이렇듯 작은 키로 산다는 건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안쓰러운 운명인 거다.
# 4. 내 키가 작았던 이유
학교에서 나는 '키는 쪼끄만데 엄청 많이 먹는 애'로 유명했다. 급식을 받을 때면 "많이 주세요. 엄청 많이요."를 하도 외치다 보니 급식 아주머니들께서 내 이름도 기억하시고 유난히 이뻐해 주셨다.
하지만 우리집 냉장고엔 할머니, 할아버지 취향의 고추장아찌, 마늘장아찌, 양파절임뿐이니 선뜻 반찬에 손이 가질 않았다.
'돈가스까지는 안 바래도 김이나 계란 프라이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내 주식은 늘 가성비 좋은 김치와 계란 프라이였다.
아빠가 이혼한 뒤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우리 집 요리는 할머니가 다 책임져주셨다. 연세가 많으셔서 자주 요리하시기가 힘드시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반찬만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다.
나도 우리 집 형편 뻔히 다 아니까 맛있는 반찬이 없어도, 할머니 음식 솜씨가 별로여도 웬만하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다만 혼자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아까 학교에서 먹었던 제육볶음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다. 좀 더 먹을 걸 그랬네.'
"왜 이렇게 안 먹어?"
"... 아까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친구들이랑 뭐 사 먹고 왔어."
이렇게라도 말해야 안 먹어도 덜 혼난다.
내가 밥을 자꾸 거르자 할머니가 시장에서 미숫가루를 사 오셨다. 할머니가 맹물에 타 주신 밍밍한 미숫가루를 사약 마시듯 억지로 마시고 나면 그제야 밖에 나가 놀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것도 고소한 우유에 타면 분명 더 맛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잊히지 않는 결정적인장면도 있었으니.. 그 날은 밥을 먹다가 반찬에 하얀 곰팡이가 핀 걸 발견한 날이었다. 곰팡이를 보고 역겨워하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곰팡이 난 부분을 숟가락으로 푹 퍼내셨다. 그래, 거기까지는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이 문제였다. 할머니가 씻지도 않은 그 숟가락으로, 곰팡이 났던 그 반찬을 아무렇지 않게 또 드시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충격의 도가니였다.
'뭐야.. 혹시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것들도 전부 다 곰팡이 폈던 거 아니야?'
그 뒤론 밥상 위에 올라온 반찬들이 다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반찬들이 전부 멀쩡한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안 그래도 없던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웩.
마르고 왜소한 내 모습..
곰팡이 사건은 그때 이후로 몇 번이나 반복됐다.
그때마다 할머니에게,
'나는 급식 잘 먹고 다니니 나 먹으라고 일부러 반찬 아껴먹어서 곰팡이 피게 하지 말아 달라, 그리고 제발 곰팡이가 생기면 아까워하지 말고 전부 다 버려달라' 사정을 했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우리 할머니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색깔 쪼금 변했다고 그 아까운 걸 다 버리냐? 그렇게 치면 먹을 반찬 하나도 없어. 먹어도 안 죽으면 그만이지!"
에휴... 말이 안 통해.. 이러니 내가 집에서 마음 놓고 식사를 할 턱이 있나.
그나마 학교 급식을 잘 먹어서 이 정도 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지, 옛날처럼 집에서 도시락을 싸갔다면 진짜 난쟁이 똥자루라 놀림받았을 거다.
그런데, 작은 키가 내 목숨을 구하게 될 줄이야!!
# 5. 견디기 힘들었던 너의 향기
당신의 가습기는 안녕하세요?
이럴 수가. 가습기에 세균이 잘 번식한다고?
요새 집에 늦게 들어오느라 며칠 세척을 못했던 거 같은데설마 벌써 세균이 퍼진 건 아니겠지?
퇴근길에 곧장 마트에 들렀다. 찾았다! 가습기 살균제!
가만..라벤더향과 솔잎향두 종류가 있네?
난 라벤더가 좋은데하필 그건 맨 꼭대기 줄에만 있을게 뭐람.저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심호흡을 깊게 한 뒤 까치발을 들었다. 하지만 있는 힘껏 높이 손을 뻗어도 선반 밑에만 겨우 손이 닿을 뿐이었다. 점프를 하면 되려나? 헐..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는 바람에 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렸어..
꼬르륵. 배고파.. 왜 하필 아무도 안 지나가냐.. 에잇, 모르겠다. 아무거나 사자. 그렇게 솔잎향 살균제를 들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졸졸졸.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 새로 사 온 살균제를 가습기에 넣어보았다. 우웩, 이게 뭐야. 솔의 눈 음료수 냄새잖아! 숲 속에 온 것 같은 상쾌한 피톤치드 향이 아닐까 잠시 기대했건만.. 아우, 이 냄새를 맡느니 차라리 가습기를 자주 청소하는 게 낫겠다!!
쏴아아... 결국살균제를 변기에 버려버렸다. 잘 가라.. 내 돈.. 아구.. 아까워...
그 날 후론 이미 세균이 번식했을지도 모를 가습기가 영 찜찜해서 아예 사용도 하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학병원에서 임산부 환자들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줄지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에서는 그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고 있었다.
어? 저거 많이 보던 그거.. 내가 샀던 거! 그거 맞는데?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만약 그 날 손쉽게 라벤더향을 살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살균제를 매일 사용했다면..? 오 마이 갓...!! 와, 상상하기 조차 싫어...!! 키가 작아서 살았어!!
(다시 한번 피해자 관련분들께 깊은 위로를 표합니다....)
# 6. 주인공 자리는 전부 내 거
이번 일을 계기로 곰곰이 생각해보니키가 작은 게 꼭 불편하기만 한건 아니었다. 새 학년이 될 때마다 키 순서대로 자리를 정하면 나는 항상 맨 앞 줄에 앉았다. 학기 초의 긴장된 마음으로 교탁 바로 앞에 앉아 있노라면 교탁은 왜 그렇게 높아 보이고, 선생님은 어쩜 그리도 우러러 보이던지.. 선생님의 커다란 눈이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 같아서 감히 딴짓할 생각도 못하고 선생님의 농담까지도 메모하며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
또 수학여행이든 졸업사진이든 단체 사진을 찍으면 항상 나는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서게 됐는데 그러면 꼭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 합창단 시절.. 나란히 선 친구들 틈에서 작은 내 모습.
"거기 셋째 줄에 머리 긴 여성분, 얼굴 가려서 안보이니까 신부님 옆으로 내려오세요."
결혼식에서 꾸물대다가 뒷줄에 서도 결국엔 앞으로 내려오게 되니 이건 뭐, 내 지정석이구만..
키가 작아서 얻게 되는 소소한 행운들도 꽤 있었다. 친구들이 작아서 안 맞는 옷을 주기도 하고 키만큼이나 작은 내 손엔 3부 다이아 반지를 껴도 알이 커 보이니 1캐럿 다이아 반지가 안 부러웠다.
경차를 타도 내 몸에 딱 알맞고, 작은 집에 살아도 크기가 딱 좋으니...키 작아서 돈 굳었네~!
# 7. 새옹지마
<새옹지마> 세상만사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재앙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사전)
한번 더 반찬을 퍼주시며 많이 먹고 쑥쑥 크라던 급식 아주머니의 환한 웃음이, 맨 앞자리에 앉은 나를 향한 선생님의 눈 맞춤이, 꼬맹이라 놀려대며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 목소리가, 나에겐 다 사랑이었다.
엄마 없이 자라고, 가족들로 인해 상처가 많았던 나라서, 사람들이 이런 나를 좋아할까 두려운 마음에 차마 먼저 다 갈 수 없었는데.. 작은 키는 그런 나를 혼자 맴돌지 않게 해줬다.
그렇다면 내 키는 나의 못난 점이 아니라, 나의 안타까운 가정사 탓이 아니라..
나를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게 해 준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내 키를 보고 안타까워했지만 난 작은 키 덕분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에도 그 작고 사소한 관심들이 흔들리는 나를 바로잡아 주었고
따뜻한 말 한마디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춥고 외롭던 내 인생을 따뜻하게 녹여줬다.
우리의 약점 때문에 자신의 진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루돌프도 놀림받던빨간 코때문에 안개 낀 성탄절날 썰매를 끄는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니까.
헬렌 켈러의 선생님으로 유명한 설리번도 어릴 적에 시력을 거의 상실하여 시각장애인 학교를 다녔다는데...
그 좌절스럽고 어두웠던 터널을 먼저 지나왔기에 헬렌 켈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때때로 약점은 우리를 더 노력하게 만들고, 생각지도 않았던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고,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도 해준다.
세상이 여전히 아름다운 건아무런 부족함 없는 완벽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한번 더 돌아보는 연약한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픔을 아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