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로부터 살아남았던 건

Just Be yourself, Be original

by shining days

'신이 나를 만들 때'가 유행하길래 나도 한번 내 이름을 넣어보았다.

이럴 수가. 기럭지는 아예 넣지도 않았다?

거참, 보기보다 야박하시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가 될 뻔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니... 기럭지를 안 준 신에게 감사하달까?


어휴.. 키가 작아서.. 정말 다행이야..



# 1. 키가 몇이야?


누군가 내 키를 물어보면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자, 기대해~
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작을 거야."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성적 때문에 놀란 게 아니고 거기 적힌 키 때문에...

5학년 성적표에 적혀있던 키가 129cm였는데 6학년 말쯤 병원에서 쟀던 키는 144cm였으니 1년 만에 무려 15cm나 자 것이다. 다만 슬픈 사실은 15cm가 자라도 여전히 작으니 가족들도, 친구들도 내가 이렇게 많이 큰 걸 몰랐다.


지금 키는 그때보다 쪼끔 더 자란 151.5cm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정. 말. 작. 다.



# 2. 키가 아서 생긴 에피소드들


내 옆에 서면 누구라도 키가 커 보이는 마법을 누릴 수 있는데 근엔 내가 안고 다니던 우리 둘째가 그랬다.

러다 남편이 둘째를 안으면 으레 듣는 질문이,

"? 애가 원래 이렇게 작았어요?"


반대로 남편이 애를 안았다가 다음번엔 내가 안은 걸 보면

"와~ 애기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요? 아니, 얘는 첫째인가?"

(아니에요. 걔가 걔에요...)


한 번은 스키장에서 넘어져서 대자로 뻗어있는데 지나가던 커플이 응원을 해줬다.

"꼬마야~~! 힘내! 파이팅!"


대학생 땐, 버스기사님이 나를 초등학생으로 착각하고 돈을 우르르 거슬러기도 했으니..

키가 작아서 생긴 일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아마 밤을 새도 모자랄 듯하다.



# 3. 키 작으면 많~이 불편해


키가 작으면 일단 맞는 옷을 찾기가 힘들다. 지 길이를 수선하면 른 천으로 바지 하나는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긴팔 소매 항상 두세 번씩 접어한다.


재킷이나 코트는 디자인이 예쁘고 색이 어떻고를 따질 수가 없이 그냥 몸에 맞으면 는데, 그만큼 맞는 옷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게다가 요즘엔 오버사이즈가 유행해서 나같은 사람은 아주 곤란해졌지. 인터넷 쇼핑은 죄다 실패고..


내 발(220mm)에 맞는 두가 없어서 장에서 파는 제일 작은 두(225mm) 밑창을 깔도 걷다 보면 꾸만 벗겨진다.

옷장이나 주방 선반은 왜 이리도 높은지 옷걸이를 걸기가 힘들어 옷 무덤을 쌓아놓기 일쑤다.

까치발 들고 용쓰다가 반찬 그릇이 와장창 떨어져 깨질 뻔한 적도 많다.


경차를 타도 브레이크를 밟는데 다리 길이가 부족할 수가 있다는 걸.. 남들은 상상이나 할까?

이렇듯 작은 키로 산다는 건 많은 불편 감수해야 하는 안쓰러운 운명인 거다.



# 4. 내 키가 작았던 이유


학교에서 나는 '키는 쪼끄만데 엄청 많이 먹는 애'로 유명했다. 급식을 받을 때면 "많이 주세요. 엄청 많이요."를 하도 외치다 보니 급식 아주머니들께서 내 이름도 기억하시고 유난히 이뻐해 주셨다.

하지만 우리집 냉장고엔 할머니, 할아버지 취향의 고추장아찌, 마늘장아찌, 양파절임뿐이니 선뜻 반찬에 손이 가질 않았다.


'돈가스까지는 안 바래도 김이나 계란 프라이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내 주식은 늘 가성비 좋은 김치와 계란 프라이였다.


아빠가 이혼한 뒤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우리 집 요리는 할머니가 다 책임져주셨다. 연세가 많으셔서 자주 요리하시기가 힘드시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반찬만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다.


나도 우리 집 형편 뻔히 다 아니까 맛있는 반찬이 없어도, 할머니 음식 솜씨가 별로여도 웬만하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다만 혼자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아까 학교에서 먹었던 제육볶음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다. 좀 더 먹을 걸 그랬네.'


"왜 이렇게 안 먹어?"

"... 아까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친구들이랑 뭐 사 먹고 왔어."

이렇게라도 말해야 안 먹어도 덜 혼난다.


내가 밥을 자꾸 거르자 할머니가 시장에서 미숫가루를 사 오셨다. 할머니가 맹물에 타 주신 밍밍한 미숫가루를 사약 마시듯 억지로 마시고 나면 그제야 밖에 나가 놀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것도 고소한 우유에 타면 명 더 맛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잊히지 않는 결정적 면도 었으니.. 그 날은 밥을 먹다가 반찬에 하얀 곰팡이가 핀 걸 발견한 날이었다. 곰팡이를 보고 역겨워하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곰팡이 난 부분을 숟가락으로 푹 퍼내셨다. 그래, 거기까지는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이 문제였다. 할머니가 씻지도 않은 그 숟가락으로, 곰팡이 났던 그 반찬을 아무렇지 않게 또 드시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충격의 도가니였다.

'뭐야.. 혹시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것들도 전부 다 곰팡이 폈던 거 아니야?'


그 뒤론 밥상 위에 올라온 반찬들이 다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반찬들이 전부 멀쩡한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안 그래도 없던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웩.


마르고 왜소한 내 모습..

곰팡이 사건은 그때 이후로 몇 번이나 반복됐다.

그때마다 할머니에게,

'나는 급식 잘 먹고 다니니 나 먹으라고 일부러 반찬 아껴먹어서 곰팡이 피게 하지 말아 달라, 그리고 제발 곰팡이가 생기면 아까워하지 말고 전부 다 버려달라' 사정을 했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우리 할머니 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색깔 쪼금 변했다고 그 아까운 걸 다 버리냐? 그렇게 치면 먹을 반찬 하나도 없어. 먹어도 안 죽으면 그만이지!"


에휴... 말이 안 통해.. 이러니 내가 집에서 마음 놓고 식사를 할 턱이 있나.

그나마 학교 급식을 잘 먹어서 이 정도 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지, 옛날처럼 집에서 도시락을 싸갔다면 진짜 난쟁이 똥자루라 놀림받았을 거다.


그런데, 작은 키가 내 목숨을 구하게 될 줄이야!!



# 5. 견디기 힘들었던 너의 향기


당신의 가습기는 안녕하세요?


이럴 수가. 가습기에 세균이 잘 번식한다고?

요새 집에 늦게 들어오느라 며칠 세척을 못했던 거 같은데 설마 벌써 세균이 퍼진 건 아니겠지?


퇴근길에 곧장 마트에 들렀다. 찾았다! 가습기 살균제!

가만.. 라벤더향과 솔잎향 두 종류가 있네?


난 라벤더가 좋은데 하필 그건 맨 꼭대기 줄에만 있을게 뭐람. 저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심호흡을 깊게 한 뒤 까치발을 들었다. 하지만 있는 힘껏 높이 손을 뻗도 선반 밑에만 겨우 손이 닿을 뿐이었다. 점프를 하면 되려나? 헐..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는 바람에 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렸어..


꼬르륵. 배고파.. 왜 하필 아무도 안 지나가냐.. 에잇, 모르겠다. 아무거나 사자. 그렇게 솔잎향 살균제를 들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졸졸졸. 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 새로 사 온 균제를 가습기에 넣어보았다. 우웩, 이게 뭐야. 솔의 눈 음료수 냄새잖아! 숲 속에 온 것 같은 상쾌한 피톤치드 향이 아닐까 잠시 기대했건만.. 아우, 이 냄새를 맡느니 차라리 가습기를 자주 청소하는 게 낫겠다!!


쏴아아... 결국 살균제를 변기에 버려버렸다. 잘 가라.. 내 돈.. 아구.. 아까워...

그 날 후론 이미 세균이 번식했을지도 모를 가습기가 영 찜찜해서예 사용도 하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학병원에서 임산부 환자들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줄지어 사망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에서는 그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고 있었다.

어? 저거 많이 보던 그거..
내가 샀던 거! 그거 맞는데?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만약 그 날 손쉽게 라벤더향을 살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살균제를 매일 사용했다면..? 오 마이 갓...!! 와, 상상하기 조차 싫어...!! 키가 작아서 살았어!!


(다시 한번 피해자 관련분들께 깊은 위로를 표합니다....)



# 6. 주인공 자리는 전부 내 거


이번 일을 계기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키가 작은 게 꼭 불편하기만 한건 아니었다. 새 학년이 될 때마다 키 순서대로 자리를 정하면 나는 항상 맨 앞 줄에 앉았다. 학기 초의 긴장된 마음으로 교탁 바로 앞에 앉아 있노라면 교탁은 왜 그렇게 높아 보이고, 선생님은 어쩜 그리도 우러러 보이던지.. 선생님의 커다란 눈이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 같아서 감히 딴짓할 생각도 못하고 선생님의 농담까지도 메모하며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


또 수학여행이든 졸업사진이든 단체 사진을 찍으면 항상 나는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서게 됐는데 그러면 꼭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 합창단 시절.. 나란히 선 친구들 틈에서 작은 내 모습.


"거기 셋째 줄에 머리 긴 여성분, 얼굴 가려서 안보이니까 신부님 옆으로 내려오세요."

결혼식에서 꾸물대다가 뒷줄에 서도 결국엔 앞으로 내려오게 되니 이건 뭐, 내 지정석이구만..


키가 작아서 얻게 되는 소소한 행운들도 꽤 있었다. 친구들이 작아서 안 맞는 옷을 주기도 하고 키만큼이나 작은 내 손엔 3부 다이아 반지를 껴도 알이 커 보이니 1캐럿 다이아 반지가 안 부러웠다.

경차를 타도 내 몸에 딱 알맞고, 작은 집에 살아도 크기가 딱 좋으니... 키 작아서 돈 굳었네~!


# 7. 새옹지마

<새옹지마>
세상만사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재앙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사전)

한번 더 반찬을 퍼주시며 많이 먹고 쑥쑥 크라던 급식 아주머니의 환한 웃음이, 맨 앞자리에 앉은 나를 향한 선생님의 눈 맞춤이, 꼬맹이라 놀려대며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 목소리가, 나에겐 다 사랑이었다.


엄마 없이 자라고, 가족들로 인해 상처가 많았던 나라서, 사람들이 이런 나를 좋아할까 두려운 마음에 차마 먼저 다 갈 수 없었는데.. 작은 키는 그런 나를 혼자 맴돌지 않게 해줬다.


그렇다면 내 키는 나의 못난 점이 아니라, 나의 안타까운 가정사 탓이 아니라..

나를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게 해 준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내 키를 보고 타까워했지만 난 작은 키 덕분에 은 이들의 관심 받을 수 있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에도 그 작고 사소한 관심들이 흔들리나를 바로잡아 주었고

따뜻한 말 한마디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춥고 외롭던 내 인생을 따뜻하게 녹여줬다.


우리의 약점 때문에 자신의 진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루돌프도 놀림받던 간 코 때문에 안개 낀 성탄절날 썰매를 끄는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니까.


헬렌 켈러의 선생님으로 유명한 설리번도 어릴 적에 시력을 거의 상실하여 시각장애인 학교를 녔다는데...

그 좌절스럽고 어두웠던 터널을 먼저 지나왔기에 헬렌 켈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 않았을까?

때때로 약점은 우리를 더 노력하게 만들고, 생각지도 않았던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고,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도 해준다.


세상이 여전히 아름다운 건 아무런 부족함 없는 완벽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한번 더 돌아보는 연약한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픔을 아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니까.


우리가 쥐고 있는 이 패가 똥이 될지 금이 될지 인생,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거지.


그러니 Just Be yourself, Be original.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의 예쁜 말 대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