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왔니? 이번에 정부에서 쌀을 지원해줬어. 이따 선생님 차 타고 같이 집으로 가자."
찜통 같이 푹푹 찌는 여름날이었다. 선생님은 예쁜 정장 차림에 또각 구두를 신고 계셨다. 저 구두로 우리 집 계단을 오를 수 있을까. 그냥 오르기에도 가파른 계단 위로, 무거운 쌀포대를 끌어안은 선생님의 이마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이 좁아서 두 사람이 같이 설 수조차 없었기에 나는 계단 아래에 서서 선생님의 위태로운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금방 올라갔을 텐데..' 수평도 맞지 않는 삐뚤빼뚤한 시멘트 계단이 그때만큼 송구스러웠던 적이 없었다.'하긴, 그런 집에 살면 애초부터 지원받을 일도 없었겠지.' 혼자서 별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 쌀포대가 무사히 집 안으로 도착했다. 발을 헛디디진 않으실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손바닥을 탁탁 털고 이마에 난 땀도 쓱 닦아내셨다.
"감사합니다."
자동차는 아까보다 가벼운 몸짓으로 신나게 멀어져 갔다.
오늘도 교무실 호출을 받았다. 친구들이 의아한 듯이 묻는다.
"선생님은 왜 자꾸 너만 부르셔?"
"글쎄..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교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마음이 분주해졌다. '이따 친구들한테 뭐라고 핑계 대지? 이번 주 주번도 아니고 청소 당번도 아닌데. 숙제 때문에 뭐 좀 물어보셨다는 건 지난번에 써먹었잖아. 아~ 뭐라고 해!'
교무실 호출이 거듭될수록 핑곗거리는 점점 바닥이 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좋은 의도라 해도 교무실 호출이 영 달갑지가 않았다.
선생님 차에 탈 때 누가 볼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교무실에서 정부지원 설명을 들을 때도 누가 엿듣진 않을까 얼마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가슴 졸이는 게싫다. 자꾸만 거짓말하게 되는 것도 너무 싫다. 영광스럽지도 않은 가난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인가. 쥐도 새도 모르게 지원해 줄 수는 없을까? 좀 더 세련된 방식은 정녕 없는 걸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은 없었다. 나는 그저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가난한 학생이니까. 어른들에겐 이런 게 다 배부른 소리, 혹은 철없는 투정으로 들리겠지. 나는 오늘도 처지에 걸맞게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네? 컴퓨터를 공짜로 준다고요?
조금 전의 까칠함이 쑥 들어갔다. 상상도 못 했던 물건.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물건. 컴퓨터를 주신다뇨... 그까짓 핑곗거리 100개도 댈 수 있어요! 넙죽 절이라도 할 수 있어요!!
이미 친구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갖고 있던 컴퓨터였다. 나는 이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갖게 됐지만 그마저도 정부 지원이 아니었다면 아마 성인이 될 때까지 못 사지 않았을까?
그동안 겪었던 시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께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 대해 숙제를 내주신 날이었다. 도서관 책으로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에버스를 타고 시청으로 찾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청 직원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지..) 직원분께서 나눠주신 자료를 참고해서 A4용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손글씨를 써 내려갔다. 시간도 오래 걸렸을뿐더러, 오른쪽 팔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결과물은 정성에 비례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앉은 자리에서 복사, 붙여 넣기만으로도 엄청난 정보를 긁어모았고,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인쇄된화려한 지도와 사진들은 당장 책으로 내도 좋을 만큼 완성도 있어 보였다. 내가 굳은살까지 배겨가며 정성을 들여봤자 가장 볼품없고 초라한 건 결국 내 것이었다. 으, 잔인한 정보화 세상.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더 이상 손글씨도 허용되지 않았으니, 바야흐로 컴퓨터가 필수품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는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어떻게든 생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숙제를 적은 노트와 과자를 들고 친구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있잖아. 우리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그러는데... 미안하지만 이것 좀 타자로 쳐서 인쇄해줄 수 있을까? 바쁜데 귀찮게 해서 미안해."
친구는 분명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귀찮아 죽겠네...'라는 표정이 무척이나 나를 아프게 찔렀다.
"정말 미안해. 다음엔 이런 부탁 안 할 게. 이번한번만 부탁해." 돈이 아까워서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과자를 친구의 손에 쥐어주었다. 가격까지 기억나던, 2500원짜리 치킨 닭다리 모양의 과자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라고. 단지 조금 불편한 존재일 뿐, 가난은 죄가 아니라 했다. 하지만 나는 가난 때문에 수치스러웠고, 많이 불편했으며, 죄인처럼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다행히 솟아날 구멍이 있긴 했다. 그 무렵 동네에 PC방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노트와 펜을 들고 PC방 간판이 보일 때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 "1시간에 얼마예요? 1장당 인쇄비는요?"
가장 저렴한 PC방으로 가기 위해 숙제할 때마다 왕복 50분을 걸어야 했지만 그래도 몸이 힘든 게 마음이 힘든 것보단 나았다. 최소한 친구에게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으니까. PC방 안은 어두컴컴했고 마치 거대한 흡연실 같았다. 여자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있는 남자들은 게임을 하며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고, 바로 옆자리에서 담배연기를 푹푹 내뿜었다. 괜히 해코지를 당할까 무서워서 싫은 티도 낼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도 드디어 컴퓨터가 생겼다! 이젠 담배 냄새 때문에 숨을 참을 필요도 없고,돈 때문에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과 메신저도 할 수 있다. 그동안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어서 답답했는데.. 컴퓨터 하나가 생긴 것만으로 나를 막아서던 온갖 장애물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
출처: 생리대 살 돈 없어 신발 깔창, 휴지로 버텨내는 소녀들의 눈물(국민일보 2016.6.8.)
그 후로 2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꽃 같은 소녀들이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댔고,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일주일 내내 방 안에서 수건을 깔고 누워있었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들의 생리대처럼, 그 시절 나의 첫 컴퓨터처럼, 세상엔 여전히 필수품이 필수가 아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에겐 당연한 물건이 누군가에겐 꿈도 못 꾸는 물건일 수 있다. 가장 낮은 자리의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한 세상이었으면...
결핍 가득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만큼, 따뜻한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만큼, 이젠 내가 꽃 같은 사람들을 도와줄 차례라고,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피워낼 수 있도록 아주 작은 햇살이 되어줘야겠는 생각을 했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며 도울 수 있을지, 지금껏 받아온 만큼이라도 다른 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작은 것부터 노력해보려고 한다. 누군가 나에게 부탁하면 최대한 친절하게 도와줄 것이다. 내 간단한 수고가 누군가의 50분의 걸음과 맞바꾼 건지도 모르니까.